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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age/jydh/RG-01-중앙여대협/2006
--- page 1 --- 도 000후06 다가오는 2006년 3월 15일. 1992년 1월 8일 시작한, 그녀들의 한 서린 외침이 700차를 맞이합니다. 그 대단한, 그러나 기념하고 싶지 않은 700차의 역사동안 그 외침에 대한 당신의 SHE... 과연 몇번째입니까? --- page 2 ---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가 3월 15일로 700차를 맞이합니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할머니들이 차가운 길바닥에 나오게 한 것은 아마도 우리들의 실천이 부속했나봅니다. 각 단위에서의 교양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12기 전국 여대생 대표자 협의회 - Geer Gee 위안부 문제 HAR Pg 수요시위란? 피해자 증언 2006년 일본군 '위인부 문제 해결 투쟁 과정 우리의 과제 --- page 3 --- fail) 에 그 죽였 = 20 of ee 버 a * = F ln wn KK = 1 해 위 이 z gee F avert wo Se) 푼 SB 2 소 oe oak 7 Toe Br Hof 때 Ko le < — 25 은 =< ov 호 ㅇ fp Tos p oo: SUE a 두 「 과 저 로 S28 e hae egtetes - RRS % i om 이 ve BEETS B Poy _— 고 ~ 2h Ke oft oF Pe goal 위 sm 5 * mR 지 * ag th i ar Cm fF 더 이르 그 오 ol 0 oe Ne 190 my yy a me oF fEUEELS » pee SM os 주 te Ht 젊 Ho Mi Hom ow & yw © de 1 2s a m Sy DB 불 zs 4 ig 수 weeee es 3 Be 때 gx 퍼 음 4 ® zig Be ERR EE ri yp oe Sr we & 0 jo 와 xX 60 To 7 = ° oO) 1 이 머포 iS x 20 7K 0 782 그 흐 po 이 도 gil 후 Sz 더 eEveree 은 bes a nH a EO 개 이 호 퍼 Fu 호 앤박 기 mail geen ee pa o HM ~ eid 으 ne oN 이 mK 20 Fr x OP xr TY 4 옴 바 Xd =o ® = we Bs 0 Ke 재아 00 해 그 민호 or 머 od = 0 on > ny 0 vom na OF cay! ac 이! 2 7) OW _K ar D> OF % 기 SS Ms of — a Ka =x 아브 "i 퍼 — a BS Od 그 오 aH 10 BS 고 = <r eK 4 rou Be a 3 ix 10 시 90 ® oy mo 놈 커 30 ~ 머 10 = © We ab op 파 인 AF 20 oJ a va on 으 010 전 = x ey 고 이 중 eke PEL a im a 2p a yp 박 솜 = x oR o 4) 8 인 & ao So 10 은 Bo x m Xx ® > A oh = 2 ee eee x 푸들 주 느 소후 제 수 . ° ™ — 2 0 K a a ae UE Lagu F se 2 uf Sho 호 Se 2 ee 모 Oo ~ = _K Bree s ot oe 때 고 84 고 - = ob ㅇ SS me o 26 ZF 때 00 oto am & = 이 쪼 은 67 Woe ay 해 가 후 oT dle ㅎㅇ 매장 이 음 m2 ols fo 2 yee h So NE 기) 100 x 중 이 10 3 [때 un = je Fe — un Be = 2 RO at Bob 주 두 BY aR 4/1] ot 솜 대 코이 주주 8 uw ZS EEG 7 ze 5 fase uae 6 ag 9 / : : 대 ! = o 20 op 지 / \ me ye es be i ev 의 mr lo =e 해 RR sk a KP 별 < 0 ㅡ- 향 00 으 a do gS OM ay oy a = uy RE 9 = x 더 7. — na % bin fis = 포 a) oF = via Ne at 본 버 1 x 1 = 므 Fa RR 7 ° a RO i | MF aR ®K KO Db 이 내 wks an fp 수 때 53 700 8 숭 hl « 고 ar <x 모종 때 가 6 분 모프 ra 이 퍼그 퍼오 oi F Xk 때 Bom SS 여 = 20 Th BSR Th ‘OF KO KO XK - 주 ue Do e d Be Ae ys eo i 10 은 2h ee zB OF om J re 주 에 모 00 EE Wi oF Fhe ® x oy 수 as x wo K ol 록보 기유 소제 주 호엔 Be 30 6 때 기 호 ay 을 oat Pena OS 브 Nor 76 O = 호 홈 가 - 9" ees ns 20 76 TA AIP 11 00 gO = eas KO 140 Wo ol “6 2 ㅠㅠ 더 호 - ° po Fo ry XP BP 이 ~ 2 mr _ 퍼머 의 a 호 Gar se 개 동 는 1 me '뻐 2 후 F ou mk © 때 바조 — Ke 1 - 고즈 ® 2 그 RS SEARS x TS oS om op 으라 고 ny gee ib 2 도 하기 1% L A 히 se 사용 1가 주둔지에 용트럭 126분이 & ㅣ 할머니가 생존해 계신 cay 계신다. --- page 4 --- 하 머 파 Bo Db > on 90 i eo Ro 호 oO a un Fe Sl RO oe K 보오 머포 주 벼 0 + Wap Bw & wo = mo * ㅎ + N WN a Or ey RX 때 fe) 는 aa oe, 0 os ab My Te) aS Tz ~ TO = 이을 fe hed weleeee & en CL, ee QREM Se iN K dp TaN 족 << aw eS ob cs He Bue Re yy TT > pp he “ 10 oe Boo ag TF of i 주 xa 그 a2 ㅠㅠ B eu tO Ra es % 30 ~ ! :겨 ’ 7 Fo ! 149 eae we a 수 하오 a me BN Ne ow NE Bx = aia ~p EUEBSs —-~r Wp Fw 4 om a X xo fo 오오 os 0 00 ot xq "0 = HF 5 4 we Te my 개 Oa ws fo iF ll og & 글 OF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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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ㅎㅇ] H 으로 인상되었으나, 대일 관계에서 이 원 만 그 uv 원 at 9 No 과 지원을 놓지 않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2) 일본정부의 태도 를 취해왔다. 하는 자세 회에서 사회당 모또오까 쇼지(* 원 1 예산위 으 우 그 1990년 6월 참의 것은 즈 fi) 2] 나 그 H ~ 안 | 위 원ㅇ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 상대로 소송을 제기 일본정부를 ]고 그 해 12월에 +s 으로 위안부정책의 피해자임을 ¥ 으 끈 할머니가 처 자스 학순 그러나 1991년 여름, 김 관련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일 이어 1992년 7월과 다음해 8월에 제2차 하여 반 의 의사에 이등 Oo, Vue Lc ㄴㄴ ㅎ ㅎ 업자가 주로 이것을 담덩 바으 cu 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모여진 사례가 수많이 te Mie um |여 행해졌다 ㅎ 반 의 의사에 드 | ㅇ La 대체로 본 LC LO 에 의ㅎ o}- H |였다 ㅎ 다고 끄 ㅜ 에 지나지 않았다. 구 내 | ZAI 미 , 후생성 등의 자료는 전ㅎ 그 ak 자 3 x 입장 다는 이미 해결되었 =~ = 1 1965년의 한일협정으 끄 A ok 약 화조 ALA O I 한편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 이 |지만 한국 피해 ㄴ 고 ㅜㅠ ㅇ 사고 ㅇ }고 있다. 그리 ㅎ 취 배상에 대해서 으 2 를 보여 왔다. 부하는 자세 계속 거 = ㄴㄴ --- page 6 --- 또 1994년 2월 한국인 피해자와 운동단체가 일본 검찰청에 위안부정책에 관여한 일본군 관계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장을 도쿄지방검찰청에 제출하려고 하였으나 수령조차하지 않았다. 1994년 여름에 출범한 국민 참가의 AL WASP] 하고 이후 여당 9당으로 전후 50년 문제 프로적트를 VHA a 산하에 FASS ASS 설치하였다. 이 위원회의 ZS Eales 어 1995년 7A, HS ae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설립한다. 이것은 위인부문제에 관해서 도의적 입장에서 책임을 져야 한 JS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이 문제를 종결시키고자 하는 의도아래 금정 서주 진행되고 있다고 할 , 있으며 피해각국의 운동단체와 피해자들의 맹렬한 반대를 사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1992넌부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문제에 관한 토의가 시작되자 이 문제는 유엔 창설전의 문제이며 유 엔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아무 권한도 없다고 주장하고 이후 유엔에서 나온 어떠한 조치에 대해서도 거부하는 자세로 일관하 고 있을 뿐이다 1998년 4월 위안부에 대해 승수 Wo] 나온 시모노세키재판에서는 재판소가 현행 헌법상 위안부처럼 극단적 인권침해일 경우 보상 Wiel ir} GEA SMBS Berea Fav} 그동안 HATS Aaa SAE 밝혔다 이 ay 는 국회에는 헌법상 입법 됨으로써 1심의 유죄 관 3)국제사회의 대응 1992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문제에 관한 토의가 시작되었고 1993년 6월의 빈(\16023) 유엔 세계인권회의에서 전시 하 성노예 문제에 관하여 과거도 포함하여 모든 문제에 유엔이 대웅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같은 유엔과 국제 사회에서의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을 살펴본다. 0 어 Oo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국제법적으로는 '인도에 반한 죄'이며, '전쟁범죄'이다. 국제사회는 세계사에서 다시는 이러한 범죄가 일어 나서는 안 된다는 점에 Fsbo), Hts’ 이 Hae] ae 위한 DES Wel 왔다. HALE, TLE, BALES 위 한 세계의 시민단체와 UN, ILO 등의 국제기구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전범인 일본정부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cup 국제사회의 움직임으로 먼저 일본, 한국, 필리핀, 대만, 태국, 홍콩, 일본 6개국(이후 태국이 빠지고 인도네시아가 참여)의 시민 단체들의 연대활동을 들 다. 이들 국가의 시민단체들은 1992년 제1회 아시아연대회의를 개최한 후 매년 참가국을 돌며 연 대회의를 열고, 서로 정 , 유엔 등 국제 장에서 협력하고 있다. — (wu in xe ke ml 레 가 i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UNS] 움직임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UNe] Zz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84이라는 권위 있는 국제 기구가 내리는 관단이 일본정부에게 강력한 YS 갖기 때문이며, 또한 UNS 무대로 세계의 시민단체들이 연대를 할 수 있기 때 문이다. 정대협이 1993년 이 LAS 유엔 인퀸위원회에 제기한 이래, 필리핀, 일본의 단체들도 인권위 산하의 수수 민족차별 및 보호 수위원회, 그리고 다시 인권 소위 밑 예제 실무회의에 매년 참석하는 한편, 세계인권대회(1993년 비엔나)와 세 je, cet Bay oft 호 Arvisielasesd Helaete 잠석하여, 메서 이 Ge ala 올바른 해결 wale AA AS AAs 이단 활등 의 결과로 인권위 여성폭력문제 특별 보고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는 '전쟁 중 군대 성노예 Lalo] 관한 조선민주주의공화국, 대 한민국, 일본에서의 주사보고서'를 1996년에 제출, 이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수 설치가 국제법 위반이었음을 인정하고 이 에 대한 Wal AVS 질 것, 피해지가 고령이므로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할 것, 즉 진상구명, 공식사죄, 역사교육, 적임자 처벌 등 bq oo ©: rok 다른 한편 1998년과 1999년에 인권소위원회에서도 게이 맥두갈 위원이 '전쟁 중 여성에 대한 폭력' 에 대한 보고서에서 무력분 쟁시의 조직적 강간, 성노예, 기타 노예관행에 관한 맥두걸보고서를 밭표하여 다시 한번 세계에 주지하였다. 이러한 유엔의 권고 PAS 주었으나, 여전히 적임 있는 해결에까지 판소(0044에서 이 문제를 다루도록, 정대협과 일본 단체들이 시도했으나 일본 정부의 동의가 필요한 절차에 범를가협회067)도 한국, 일본, 필리핀 MAS Yo) 조사한 후 1994년 마우 설 . = = Gas --- page 7 --- 하여, 일본정부에게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 1995년부터는 국제노동기구0.(0))에 한국 노농조합들이 군위안부 동원이 LOS] 강제노동금지규약 위반임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 활동은 곧 효과를 나타내 조약 및 기준 적용 전문가 위원회의 1996년, 1997년 보고서이 © 부 동원 및 착취가 강제노동금지규약의 위반이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족구하라는 내용이 실렸다. 1999년 보고서에는 다시 그 규 OF 위반 사실을 확인한 위에 피해자가 고령이므로 빠른 시일 내에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의 배상을 실시할 그래도 꼼짝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해 민간들이 WBS 열어 단죄함으로서 세계여론에 호소하자는 움직임도 구체화한 바 있다. 이 는 베트남 전쟁 범죄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러셀 YAS Bde 한 것으로, 일본 및 아시아 피해국의 시민단체들이 연대, 협력 하고 세계적인 학자, 변호사, 운동가와 함께 2000년 12월에 도쿄에서 일본군성노예 전범 국제 여성법정이 개최된 것이다. 이밖에도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우 을 만들어 이 문제 AAS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의 주 요 대학 등에서 학위논문 등의 SAS 연구가 계속 : aay avy Blog Le mur xy by 2, 4)일본의 기만적인 아시아평화국민기금(국민기금) 한국을 비롯한 피해국들의 사죄와 배상 요구에 대해 일본정부가 고심하여 내놓은 안이 1995년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 금'(이하 국민기급)이다. 정대협의 회원단체 모두가 이 기금에 반대하였으며 그에 상응하는 운동으로 국민모금운동을 시작하였 다. 일본의 '국민기금"을 무력화시키고 일본정부의 법적 깨상이 되기까지 우리 정부와 국민이 할머니들을 위해 모금활동을 하기 로 하고 이를 위해 BE] AAS 만들 필요가 있다고 논의되었다. 준비과정을 거쳐 1996년 10월 18일 '강제연행당한 일본군 금 겨레 돕기 운동'을 시작한 배경에는 aa _ aan 피히자이기 43 aa 배상하라는 권고했음에도 waa ceive 위로금을 지급해서 해결하려는 일본의 태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직접적인 제안은 이 문제를 wus 해결하고 승화시켜 동아시아 의 새로운 삶의 길을 열자고 한 김영호 (경북대 교수)였다. 그는 [한겨레 21] | 제101호1990 6년 9월 5일자)에서 "정신대 할머니 들을 돕는 국민적 성금운동과 21세기를 위한 동아시아 "HF SAS 제안"했다. 이 SS 보면 '국민기금'을 거부한 할머니들의 결단에 감동해서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드리고 그 운동에 지식인들이 앞장서야 하고 이미 몇몇 지식인들은 원고료나 강연료를 이효재 정대협 공동대표도 그 다음호의 특별기고에서 “민간단체를 내세워 정부의 법적인 책임을 희피하려는 일본정부의 계략을 뜨거운 성금운동으로 분쇄하고 정신대할머니 돕기 운동을 아시아 시민연대운동으로 이끌자"고 호수했다. 이런 지식인들의 움직 임에 이 잡지 편집진에서 먼저 성금을 모으면서 이 운동을 시작했다. [한겨레21]의 1996년 10월 31일부터 1997년 5월 15일까지 7개월 동안의 특별한 노력에 힘 대학 총학생회와 동아리 단위의 모금은 물론 종교단체에서도 참여하였고 대학교수와 일본의 시민들과 단체 fe) > rT 총 5억 5천원 1심1만원을 모은 시민연대는 이 ES '국민기금'을 받은 할머니들을 제외한모든 피해자늘에게 나누어드리고 1997 운동에 힘입어 1998년 5월 한국정부가 국민기금에 상응하는 ES 지급하게 된 것이다. ” = 이 피해자이자 생존자가 밝혀지면서 '위안부'문제 해결투쟁은 지금까 지 ASSL 있다. 1992년 1월 8일 ] 비이지의 전 일본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간혈적으로 진행되던 시위가 정기시위로 자리 잡게 --- page 8 --- im {1 된 01 y 2 > ao, clr ne : ey do, 된 [01 qt etl x 의 바버 오 Bu [원 fu if oO cp 은 any 도 clr ies Ht 2, di a ov tea x 모 때 에 Ney [원 (요 Bud jo, ox Ki 1 acy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이자 생존자, 증언자이신 피해 여성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수요일 18시면 어김없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그 주마다 일어났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인사들의 만행을 규탄하거나 역사교과서 왜곡 등을 반대해 투쟁해왔고,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에 대해 젊은이들이 WIS 가지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수요시위는 또한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알게된 일본인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참여하는 Plo} 실천의 공간이기도 하다. 전 세계를 통틀어 최장기 시위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대협 7대 요구안 » 1.일본군 위안부 범죄인정 2.진상규명 3.국회결의 사죄 4.법적 배상 5.역사 교과서 기록 6.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7.책임자 처벌 D 4. 피해자 증언 : [문필기 할머님의 증언] - Hee 태어나 나는 1925년에 경남 진양군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PHYS 했다. 형제자매는 2남 9녀였다. 딸 ow 중 MS 어렸을 때 죽었다. 어머니가 아들을 못 낳는 고 작은 어머니 몸에서 아들을 낳아 여섯 살 때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그 후 어머니가 마흔한 살에 아들을 낳았다. 어렸을 때 내 이름은 미요코(39(타"였다. 나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내가 아홈 살 때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쌀 한 BS 팔아 보통학교에 넣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시나는 공부하면 여우가 된다"고 입학한 지 5일 만에 학교를 찾아와 교실에서 나를 끌 어내고 책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일로 나는 아버지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고 결국은 집에서 쫓겨나 큰집에 가 있었다. 다시는 SHS 안 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옴 수 있었다. 나는 공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PM 안 보는 데서 공부해 똑똑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로 실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page 9 --- 였다 나는 Ko} 크게 가지려 아홈 살 때부터 집에서 fe) He = ㄴㄴ 으므로 내가 Yo] 노릇을 했다. 었 즈 = pau] 장래가 매양 그 꼼 일거라고 생각하고 ㅁ 내 위로 언니들이 어려서 은 호 00 ER 혀 Ni 혜 호 ry oF 퍼 허 ex < yee o € 10 xh > . xX OF KN 은 KR 호 eESH Fam 폴 om M x TF x 위 aS eo MM 2 oS oJ OK o MN = oO 대 NX) JJ are 버 y= "SPW wae 이! mw om NS 은 = Eo 0 Roy EP ow Ff PR 좁 > RD ~ 머 aye ao oN 그 at 두 ao ny Qe vn = Te Ri Nb 20 70 mb Ab 6 + 끊 NA ‘Oy > ry ny ro) By x * a ㅡ mR Boll BO of ak og Re OP A = an WY 0 때 이 < Or S =z > Th ml x m of mI 퍼 m 더 202 ui %< > os Be ox 0 ㅇ of 5B gaunt pa RES + 베 ~ wy we rs 2 ce 제고흐 대 hy By 인 — YW = B jo 00 =~ 으 ms iy z = XK jo ov oe m oF pho 교빔고 0 Bol 또 at dep yo ee Pow ew RUE 90 파 a a 고 현 OR} 그 > N > 으 Ox ut oO — 아 30 므 ㅎ 28 후 호 THK ob 호 a 꼬 AS me _ Te 더 aee RS Le 에 소 때 은 때 ak Wok Dogs ry ee Bey x fu Ye ows arn x e ce 일 SX ee Zep 오긴 Boe Sz cand ma Co hp 소래 BE BB? oh Dm § ” an 더 fo 오 비 ~ 건 oy OF Sank ol) = Qo ny ™_K 1 NFO 100 - 00 o TR Kd 고 % & = 호 ae & 도 후 는 개 가 SO 좋 x o MK Tr 더 a = Br ° : Dh oy 로) 20 = as 벼 x _ oy oo 수 zi a 7k ow oo 후포 Sok KR eS ao Zz oh AEE VN eh 움 se 허페이 & 로 se Boa KD Fy Pw qr MBN aE 을 에 yes a 에 ke =m ey 전 as moo. 2 oo ok 12 zm io nm Of os = Re Te Fo ny 이부 고 호 UE 은주 TER dy ob heER<®P Roe 00 깨우 46 a oN xX oO ox mo ay 2 떠 ~ nk S pe 주 we : BS WwW _ ry ㅇ We MESe Sed «2 DEP Fe Leaks = oO 00 ez ye Es mT 의, oe KL Ss Xx = 8 0000 > 0 으 오죠 Re ne OR cs =o 개 Tt = 때 ext g Ape Ree Ne pene a en Pie gua guste ate te BREE fo) XK = OR 그 . oO ~ , wee gee ly Furies Fe5 ghis fawkes Beg BetSS TLHSe e SEE BFR FST EH x Te Xl gu FA xa x Oy pt OS Oo 0 ‘Jo 주 . = 40 op Me ey of am FW BW EH He % ofp = = SF op XP 20 수 1 SF A 저 a 이) ‘of irl = + 1 = TK * yw DR = 이: 버 oR . a as a OK nye i o ab TON 10 이 WJ 로 702 이 = B Ay jo WD 이 Nd Nod Ss X< 쪼 by Be Be aa oo 뜨 wee UKM ER!|URU VSR pre ke zs leee Re Tew Boo 프포호 asf To & peng es zSup RN RM Fear YS 2b pe wo Fee ee 호업오페 Bee ow SRF 수 . 르 0 00 8 머 wy 20 "8 bp Bre K Be R Cy | wot 으으 02 of YW i OR 더 OR | ND ob OF HBO OK ㅇ o} Lo— 사 fe) 하지 ㅇ [때 } 개의 방 0 으 = Ko} fe) ! 사람이 Key ran 과 싸우거나 Ss = | 군우 | ㅇ 본 일 |카 방식이었다. 위안부 BESO] A fe) U |는 a ㅇ 히 위 이 때서 벽이 따뜻해지게 리를 회초리로 때리고 지독하게 굴었다. 특 |게 때렸다. 사용했다. 위 Ko} Al Td ra ㅎ 위안소 려 --- page 10 --- 에 가서 고 자랐고 내 자신도 그렇게 생 Cc Cc 나에게 & = ㄴㄴ 군의 의 빨래도 했다. 낮에는 빼앗겼다. 여자에게 정조가 중요하다고 호 > 0 원 검사했다. 그 oud co 그 성주를 ^ 으로 ㆍ 일을 배워서 했다. 그리고 병 생각에 많이 지 처녀인지 있는 삼는 그 군의에게 처 = ㄴㄴ = ㄴㄴ 해야 했다. 로 내 몸을 버렀 ou 임으 근근 했 홈 나에게 자러 왔다. + 각 KY o 호 Be 후 가 = 도 ot ROT 20 K of of KD 비애 of oF D DA ok 할 swe. “SB 조주 a ees 어 초 oe ae Fp og 호 Tt 인, Ox oR KR A ek Ol N Oo ‘TB 90 이 Do WK .. 시 an oe oo BR Eg FD FEN D 240 20 fy RK Keo yo Wy SSK 2 ol fo a vy KO Te 본 8 해, 후 re MR OWS mek & ok 0 mH ld wR 니 TO NY Woo J 가 Oa 호 이 그 i me go fe 해 .복애포 MR Pe RN HORS SMW Row eS ho =e WH 분 B . os 더 62 호 Sy fp 그 = 호 아어 HH Ko Mo S 0 Bom mo 매이 자 개 Sx 70 a mM 6 - K 0 Nd BR x Ke © of m 25 이 해 을 일 머 xe” : mH Sy 8 fo Fy al PoP ob Bee em of gu IP yp eo NY ae Bees dtcg es ST ho 볼프 개 3 4 에 그 B coor ke Re ke 호온전포 Tm h <u FORT eS aie BM FP Re Mee eT E an < oo XN eo — BB Ol wy 69 N @ i bP eee Oe ee a ee a STE a LB eb . = soy & = 9" = OF 202 | — op Ae oP Ss Nf 9° ld Neaad ggee SEEREEESS SEgte Pie ee reel ee Lee NY Ox XK ro) ow © —. Ko xk iF : ㅇㅎ 22 0 ho <0 K 비자 로지 og Beha Fo oe OR Pee TEER y = itn 도 Hoan yw an 모 oe 0 님 더 시소 RS OS Of D oy Of OW I © oy ah Joey oJ Wd op ook tok? “eyelet ids see Peer ret yee sees Fare m HK o a a 100 Be Of 4 10 주 OF FOE fe Pe SPP Re PEt Keer ec HP Bev eB eas oo 도 OW 호 < 호에현이퍼뽀비오 Sek Ee eee Aaa S 0 One 후 oO of Br Bl xT KA 차 OF RU of 5 Bo S jo DK Be ok 21 00 SX BW 위 OW NK Bo =e & = 2p = ae AP oe) 분 구사 ee | 저초 oe rir E ah peer =F 부고 중 더 오퍼 ' oe = TEA nu S yin BY oo ” Fo 공 K4 = b> = > | i fo) > \ wy aie 이 3 개 <= = I 28 py NF =e A 호게 고 | ~ DAD zm oR 10 KK + 호 Dae a yD = Fe = Ci 3 2 OK ox i He tn S = bo : 피끄 ~ | : 빈 eS 5 > eS ㆍ 00 Ae ie Oo 벼군 Lo) 그 NS dS S oe A yy 포 pea 212 i : 가히 em o4 oe + 0 bd PTY WJ OF aN A --- page 11 --- 그래프로 크게 그려 벽에 붙여놓있다. 나는 다른 위안부들보다 군인을 적게 받는 편이어서 자주 혼났다. 군인이 적은 gale 열 명 내외를 상대했고, 토 일요일은 40^50평을 상대해야 했다. 우리는 ELS 갖다 주기만 했지 Ee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저금 을 한 적도 ga 8 내놓으라고 Gee AE 없다, EMEC) 와서 따로 Ee 주고 간 적도 없었다 평일 낮에는 주로 내 웃을 빨거나 EWS Meh. 군인들이 쓰고 간 삿쿠를 ALO 깨끗이 셋어서 소독하고 약을 발렸다가 ].으 ㄴ 다시 사용했다, ASN: BAS LES 몰라 한 달 가량 다른 여자들 하는 것을 wo} Meh, ala 위안부 1인등 BF 40 50개씩을 보관하고 있다가 군인들이 들어오면 끼워 주었다. 보통 세 번 사용하면 버리고 Ay ER 바꾸어 주었다. 군인들 중에는 '사면발이"9라는 '이"가 있는 사람이 많아 대부분의 위안부들이 이에 옮았다. 기요코 언니와 나는 서로 음부에 붙 어 있는 이를 핀으로 떼내 주었다. 군인들은 문 밖에 줄을 줄을 서 있다가 차례로 들어왔는데 서로 먼저 들어오려고 자기들끼리 싸우곤 했다. 그들은 각반을 벗고 기다 렸다. 앞 사람이 위안소 안에 오래 있으면 빨리 나오라고 문을 두드리고 법석을 떨었다. 군인들은 위안소에 한번 들어오면 사병 분, 장교는 한 시간 있을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5분 내외면 끝내고 나갔다. 들 | 들어와서 반드시 FES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군인들 대부분 중에는 자기가 직접 APE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SE 사용하지 않으라는 군인 세상없어도 TES 해야 한다고 끝까지 버렸다. 삿쿠를 사용하지 않으면 상사에게 이른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면 서로 좋지 않으니 삿쿠를 끼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부모형제를 떠나서 끌려온 것도 억울한데 병까지 Hori og Io clo od ok _으 4a xy Ze, oad a >» a A o&% of pe oo 으 ot 101 6 7 4a & io 호 8 Oo Ae, min = i ie 10, 대 Sed 호 by ox, ㅣ 군인 한 사람을 상대하고 나면 1층에 있는 목욕탕에 내려가서 ASS 넣은 물로 DS sor 와서 다시 군인을 받았다. 소독약 탕에 있었다. EUS 중에는 여자를 오래 못 봐서 그런지 들어오자마자 사정해 버리는 이도 많았다. 나를 괴롭히거나 못되게 구는 군인에게는 죽음험을 다해 반항했다. 그래서 군인과 싸우고 있으면 밖에 줄서서 기다리던 군인들은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나오라고 욕했다 또 군인과 싸우면 많이 맞기도 했다. 위안부 생활을 하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어떤 군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받아 주지 않는다고 Se 먹고 와서 칼 을 뽑아 들고 행패를 부렸다. 또 어떤 Tele | 먹고 위안수에 들어와 BS 다다미에 꽂아놓고 성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아 방 바닥에 칼자국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자기 하고픈 대로 실컷 하게 해달라는 위협이었다. 그러다 안 되면 BS 가지고 덤벼드는 데 이럴 패는 빨리 피하거나 혹은 누가 찾는다고 거짓말을 시켜 내보내곤 했다. : 년쯤 되었을 때 어떤 군인이 너무 괴돕히길래 나도 화가 나서 발로 AE 그는 내 옷을 다 Bal 발가벗겨 때리 7K 1년 고 칼을 SR. 그리고는 밖에 나가서 AB al 달구어진 인두 모양의 불 쑤시개를 가지고 들어와 내 겨드랑이를 지졌다. 그 긴 밤 자는 장교들은 여러 번 접촉을 요구하며 아주 귀찮게 Bo] od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또 긴밤 자는 장교 중어 ㅇ | a fal Seis WHS 다 도하고 Bre Boa ge 하며 하는 Aol 있었다. see 나는 wat 상해 esa 괴롬한음 당할 때마다 왜 부모 말을 안 듣고 이 신세가 되었나 싶어 후회가 막심했다. 결국은 내 자신이 나를 이렇 게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해만 지면 부모 생각에 가슴이 저미었다. 차라리 부모가 시집가라 했을 때 말을 들을 걸, 공부가 뭐길래 공부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이 ㅣ 신세가 되었나 생각하며 절망하였다. 가족들이 미칠 듯이 그리워 매일 울고 남의 슬픈 소리를 조금만 들어도 울곤 했다. 나는 집 생각, 엄마 생각으로 마음에 병이 나서 몸져놈기도 했었다. 살고 싶지도 않 양제와 안정제를 주기도 했다. … ia 고 도 냐 jz, 3 [모 ce 49, rr 0 ud 에 aw 2 = 08 4) 삿쿠=콘돔 5) 사면발이(0000006 pubis? 음모(쑥6)에 기생하는 이로, 물리면 음부에 Fl SUB) tt\o ne 10 mw mus - 11 - --- page 12 --- - 고향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내가 위안소에 간 지 3년째 되는 스무 살에 종전이 되었다. 갑자기 군인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위안소에 오질 않아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련 군인들이 위안소에 들어와 SS So] Br}. 그들은 우리의 FS 벗기려 했다, 일본 군인들이 도망가고 나니까 이제 소련 군인들이 우리를 검탈하려는 것이었다. 그때 i 를 관리하던 이북 출신의 조선인 남자가 큰일났으니 쓰던 물건 모두 팽개치고 어서 도망가자고 했다. 그래서 그와 그의 부 기요코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함께 얼굴에 AAPA 칠을 하고 Heke 건물 뒤로 돌아 나와 도망졌다. 나머지 위안부들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각자 뿔뿔이 홀어졌다. 는 중국에서 PE 없는 화차를 타고 압록강까지 와 걸어서 Sol] 도착했다. 고향집에 돌아가니 식구들은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실아왔다고 깜짝 놀래며 나더러 귀신이 아니나고 했다. - 방황의 세월 고향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 네가 위안부였는데 누구와 이미 Hod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나를 시집보내려고 성화였으나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Q 이었다 혼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내가 위안부였다는 이 공장에도 취직했었다고 말했다. 내 다 “et 고향에 돌아온 지 1년 만에 온다간다 말도 없이 집을 나왔다. 나와서는 진주 있었으므로 이모집에서 일을 거들어주며 지냈다. 그 후 이모집을 나와 목포, 2%, 전주 등의 술집에 있다가 남자들이 하도 A Bo] 그만두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위안부였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블까 봐 두려워 자꾸 옮겨 HAC jana) 논을 마련하여 신마산으로 나와 전세를 얻어 하숙집, We SS 했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eels) 말고 시집 을 가라고 했다. 마산에서 AAS 하다가 서른여섯 살에 철도의 선로꾼을 만나 ASE 와서 살림을 차렸다. 나와는 fg] 살 차이였는데 그와 별로 정분도 없었다. 서울 와서 그는 철도의 선로꾼일을 하고 나는 집안에서 살림을 했다. 그러다가 집안형편이 어려워 나도 따 라다니며 노동일을 많이 했다. 그는 매일 술을 먹고 내 속을 썩였다. 그는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결혼을 해서 부인과 자식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를 속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을 헤어지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었다. 혼인신고도 안하고 살았는 데 결국 그는 병들어 빚만 남기고 죽었다. 현재는 동생의 손주를 데려다 자식처럼 키우고 있다. 내가 외로위서 네 살 때부터 데려다 키웠다. 그리고 새마을 취로사업을 나 가 벌어먹고 산다. HE 일거리가 있을 때는 밤에 이웃집에 가서 한 시간에 1,000원씩 받고 부업을 한다. 지금 사는 방은 반지하 방으로 보증금 150만원에 월 7만원씩 낸다. - 하도 억울해서 동네 문방구에 가서 정신대에 관해 써 붙여 놓은 것을 보았고, 또 TV eke 출신 할머니들의 증언을 늘었다. 그래서 나도 신고해서 억올함을 By} 싶어 1992년 6월에 신고했다. 처음에는 신고하는 것을 매우 망설였으나 지금까지 내 가슴속에만 넣 고 있던 것을 다 털어놓고 나니 가슴이 후련하다. 5. 2006년 일본군 SHO’ 문제 해결투쟁의 대략적인 방향 올해는 주로 한국정부에 초점을 맞추어서 투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외교정립 -한일협정 문서에 포함되지 Me 대일배상청구를 요구하는 대중적 서명운동 --- page 13 --- : 미일동맹으로 인해 한반도 핵전쟁음모, 이라크 전쟁에 자위대 파견 및 군대 문제, 평화헌법 개악 음모 저지 ~ 국제사회연대 -전쟁 중 여성의 폭력에 대한 반대 투쟁 연대 -교포사회나 외국에 SAAS] 진행 -V oe (버자이너 모놀로그 한국공연) -유엔 인 ]권위 등 늦을 통해 일본 아바 현재 그지 nd 위한 사업과 모금사업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글 위안부 ' 명예와인권을위한 ㆍ E ante} 인권 박물관, zea = 호 때 매주 마다 수요시위 진행 주요 사업 -매달 한 번 씩 테마를 가진 수요시위 개최 -다각도로 ‘sai HAYS 지원사업 -전쟁과 여성인권 관련 세미나 개최 (3월 - 9월) 3월 주제 : 전쟁과 여성 그리고 평화 강사 : 김엘리 (성균관대학교 강사,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정책위원장) 일시 및 시간 : 2006년 3월 17일(금) 오후 7시 참석대상 : 평화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모든 이 장소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교육관 (5호선 서대문 역 1번 출구) 연락처 : 02-392-5252 주관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 전쟁과 여성인권센터 “역사속의 전쟁, 전쟁속의 여성 세미나" 일정표 (장소와 시간은 동일) 6)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막기 위한 LES 펴고 있는 국제 비영리단체 '브이 glo (V-Day) - 13 - --- page 14 --- 월 일 주 제 강사 3월 17일 | 전쟁과 여성, 그리고 평화 김엘 4월 7일 일본의 침략전쟁과 여성동원, 일본군'위안부" 박정애 5월 4일 한국전쟁과 여성 김은경 6월 2일 미군주둔과 기지촌 새움터 7월 7일 베트남 전쟁과 여성, 그리고 한국파병 김현아 8월 4일 한국사회의 군대문화와 여성 권인숙 9월 1일 오늘의 전쟁과 여성 이진숙 기자 (mbc) 6. 우리의 과제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상처와 그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남아서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다. 과거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며, 청산하지 않을 Mes. 전정 AGO] 더욱 거세어지고 있는 지금 이 AVA, abe) 그 apy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a 마 몇 년간 투병하시던 박두리 할떠니가 가족의 따뜻한 품에 안겨보시 못하고 차가운 땅 속으로 BSA 되었다. 작년에 이어 할머니들이 17분이나 돌아가 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한 번 알고 가슴 아과 하는 문제이거나, 일본여성들에게 똑같이 갖아주자는 개념 없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청산하지 못한 과거를 가진 민쪽의 아픔이자, 상상 못할 고통을 겪은 성폭력 생존자들의 문제로 폭을 넓 피해자가 있는 운동과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는 너무나 분명하다. 국제사회에서는 할머니들이 차지하는 역할과 그 안에서의 PAS 통해 한국을 인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 제는 WS we 뿐 아니라 여성인권을 제기하고 이슈화 시키고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인 1세대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하루 빨리 우리 학생들이 IS 합쳐 투쟁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자. 요원한 것은 없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게 되고 자기 주변을 통해 실천해나갈 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없다. 일본군 '위안부' 해결에 모두 나서재
--- page 1 --- |한총련 반성폭력 규약신설에 대한 단위토론 제안] 수신 : 각 급 단위 학상회 발신 : 14기 한총련 건설준비위원회 / 12기 전여대협(건) O 단위토론방도 제안 반드시! GE ESBS 꼭 읽을 수 있도록 합시다 Sa, AMZ 대의원 대회를 준비하면서 대의원 IS 진행할 때 꼭 SES 진행합시다. 그 결과를 단위로 돌아가서 공유합시다 교양이 필요하다면 전여대협에 제기하셔서 교양 요청을 따로 하셔도 좋습니다. 체적인 설명문서 Te Lu a ㄴ -대오 내 성폭력을 근절하재 우> 토론과제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대오 내 성폭력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사례들에 대해 얘기해보고, '만약 우리 단위에서 이런 elo] 일어난다면'을 가정해서 대책과 사건 해결 방 GS 세위보자. 우> 단위별 실천과제 세우기 -성폭력 229] 의지를 보이기 위한 교양 등 단위별 ARS 진향하자 O 반성폭력 규약 신설의 의의 Bupa 남녀차벌의식,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잘못된 성인식과 제국주의의 왜곡된 성문회영향으로 인해 우리니라에서는 하루평균 32건의 성 Heo] 신고 되고 있다. 신고 되지 않는 사건까지 추정하면 1년에 약 100만 건 정도가 밭성한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헌다 ASL 인간의 자주성을 과괴하는 명백한 범죄이며, 이껏은 한총련이 지향하는 사회에 철저히 반하는 형위이다. GSAS 인간의 자주성을 sashes 성폭력, YAS 근절하고 민중이 주인 되는 ao] 누구도 PLAY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투정해 나가야 할 임무가 있다 그러나 지난 기간 우리 시회의 BET} 일꾼들의 의식 부족으로 인해 한총련 대오 내에도 성폭력 Lay} 발성해 왔고, 여성문제에 다해 스스로 이에 반성폭력 규약은 한총련 일꾼 내에 발생하는 성폭력을 예방 근절하고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써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규약 제도화의 의의 kkk) 규약 AAS 통해 성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대 냐외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며 성폭력 예방 실천의 시작이 ^ 될 수 있다 2 단위에서 실제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의 사건 해결의 alt 되어 atte 의거하여 피해자 중심의 관점을 가지고 신속히 해결하는 --- page 2 ---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CHES] 결심으로 한총련이 3백만 PAS] 다양한 아래와 OFS 받아 안아 우리시회의 BES vege) Up 위해 주게적으로 HARI 부족한 것은 과감하게 혁신하재 >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한총련 규약 8장에 반성폭력 특별규약을 신설, 삽입하고자 합니다. 한국대학종학생회연합 반성폭력 규약 제 1 조 (목적) 본 UPR CHUA 내 GAS 예방하고 파해자를 보호하며, 성폭력 행위자에 대한 징계 및 AAS PRIOR 구성 한 원의 성적 자율권 확보와 성평등한 문화의 정립을 목적으로 한다. 제 2 조 (정의) 이 Weel 서 aoa er 정의는 다음과 같다. gs 죄 행위의 구성 여부와 관계없이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적 행동이나 요구 등으로 개인의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 ao] 이적 정신적, 물리적 wal wee. Ajo] 음란한 접촉을 하는 것 등의 행위 언, 음담패설을 하는 것 등의 행위 |하나 성 상품화한 사진이나 포스터 등을 붙이거나 보여주는 것 등의 행위 SAO 성비하적 Soh} Wels} 그림을 보내는 것 등의 행위 5. 기타 성적이거나 본질적으로 성에 기초한 것으로 상대방의 성적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나 발언 (3) '다리인'이라 함은 피해자가 그의 권리를 대리하도록 선임한 개인 또는 단체를 말한다. 8) '2차 가해라 함은 피해자가 성폭력 1차 피해에 연이어서 피해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가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성폭력 행위를 신고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전 과정에서 가해자에 동조하는 지에 의한 정신적인 협박이나 물리적인 강압, PAA 따돌림, 괴롭힘과 불이익 SS 말한 Js | om oe avi off Ac, ~ — D 이 규약은 가하자 또는 피해자 중 한 사람만 한총련 구성원이어도 관련된 성폭력 Alo] 적용한다 DB UAT] ASS 받는 성폭력 AR ARE 두지 잃는다 --- page 3 --- (3) 본 규약의 적용 기준 시기는 사건 발생시점이며 이후 쌍방의 지위 변화가 있더라도 이 규약이 적용된다 제 2 장 사건의 해결 제 5 조 (피해자 중심의 원칙) D 성폭력을 조사, 심의, 처리하는 과정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Q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전 과정에 있어 파해자에게 BLS 묻거나 기타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 (3) 피해자는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대리인을 동반하거나 Ade 권리를 가지며 질문에 대해 GAS 거부할 권리를 가진다. @ 성폭력 ARIS 처리하는 자와 해결기구는 피해자와 그 대리인의 WSS 최우선으로 고려하여야 하며, 피해자 또는 대리인의 동의 없이 그 들의 신원이 SSS 우려가 있는 어떠한 자료도 공개하거나 누설해서는 아니 된다. © 피해자는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특정인의 관여 또는 그 배제 기타 인권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 피해자는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대리인을 AGS 권리를 가진다. @ 신고인과 중인의 보호에 있어서도 피해자와 같은 규정을 적용한다. 제 6 조 (해결기구의 구성) OD 해결기구는 기본 사건당사자가 속한 단위에 두며 명칭은 ()0성폭력사건 대책위, ()0성폭력사건 비대위 등으로 할 수 있다. (0 단,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해결 단위를 결정한다. (3) 해결기구 구성 시 여성을 1/2 이상으로 한다. 4 전여때협과 한총련 중앙 및 지역, 지구총련은 사건해결과정을 책임 있게 총화하고, 방치되거나 은페되는 일 없이 올바르고 빠르게 Bo}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방조하고 지두할 ILS 가지고 있다. 단, 피해자의 신상보호 SS 위해 이 모든 총화과정과 지도는 제 5조에 의거한 다 다 제 8 조 (징계) 성폭력 시건의 해결기구는 성폭력 사건의 수위와 당사자 보호를 고려하여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를 포함하여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징계를 할 수 있다 (1) 피해자의 ees 부터 기해자를 공간적으로 격리한다. (0) 성폭력이나 성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한다. (3) 성폭력 싱 상담 ako 외부 단체에 다. © 신체적, 정신적 치료를 위한 의료비용을 가해자가 지급한다. © 피해자와 해결단위에 반성사과문 및 종화서를 제줄한다. © 다음의 경우에는 지위 자격 박탈, 실명공개, 법적 대웅 등으로 가중 처벌한다. 1. 징계내용을 Oe 않는 경우 2. 가해자가 신교 3. 재범, 제. L 5a ion 농조하여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등 성폭력 2차 가해자에 대해서는 제 8조의 규정을 적용한다. --- page 4 --- 제 10 조 (예방교육 D7 단위는 성폭력 예빙과 성평등의 올바른 관점을 정립하기 위하여 el 1회 이상 WHS 반드 2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피해자가해자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사후교육을 실시한다 제 11 조 (공괴 해결기구는 징계결과를 1주일 이상 공고하여야 한다. -ㅁ 전여대협, 한총련 중앙과 이하 A 단위는 이 규약의 취지와 내용을 매년 일릴 의무가 있다. 드시 심시한다 --- page 5 --- <참고자료 1> 한국대학송학생회연합 반성폭력 규약(신설안)- 해설 <127| 전여대협> : 성폭력은 강긴뿐만 이니라, 성희롱이나 성추행 SS 포괄하는 의미로 op]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하하는 5 is] 0 ㅇ ㅇ cL 만영화, 도서, 음란만화), 스토킹 등이 성폭력에 해당한다. 또한 성폭력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공포 유발, 그를 이용한 행동 제약도 간 하며 가해자 처벌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피해자의 치유과정에 대해서는 소홀하기 쉽다. 피 제 4 조 (적용범위) QB UPTO] ABS 받는 성폭력 시건에는 시효를 두지 잃는다 ㅡ 규약 이전의 시건이거나 시건이 발생한 시간의 Zola] 상관없이 규약 제정 후 접수된 사건이라면 시효에 상관없이 규약의 적용을 받게 됩니 다 OP 규약의 적용 기준 AVES 사건 발성시점이며 이후 쌍빙의 지위 번화가 있더라도 이 규약이 적용된다 > 본 규약의 적용 기준은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시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지위, 성황 ES 기준으로 히며 이후 시건 해결 과정어서 서로 의 지위 변화나 활동 공간이 변한다 하더라도 시건 시점 기준으로 규약을 적용한다는 의미이다 제 6 조 (해결기귀 01) 해결기구는 기본 사건당사자가 속한 단위에 두며 명칭은 ()0성폭력사건 대책위, (0성폭력사건 비대위 등으로 할 수 있다. (0 단,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해결 단위를 결정한다. > 해결 기구는 피해자가 대리인으로 지정하는 사람과 가해자, 가해자를 함께 책임지고 있는 단위를 지정하는 것에 따라 해결기구 구성원과 난 위가 결정되어야 한다. --- page 6 --- (3) 해결기구 구성 시 여성을 1/2 이상으로 한다. > 가부장적 사회에서 학습되어진 정도에 따라 사건 해결 과정에서 2차 가해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가 95% 이상 여성 임을 감안하여 즘 더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결 할 수 있도록 해결 기구 구성원의 절반 이상은 여성으로 한다. (1) 각 단위는 성폭력 예방과 성평동의 올바른 WAS 정립하기 위하여 연 13) 이상 교육을 반느시 심시한다. 그 u + 성폭력은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과 피하자 치유 프로그램으로 끝나는 Zo] 아닙니다. 성폭력은 한 개인만의 사건이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해 는 Bae BE Alo) 여전히 그 GAM APN ah EAP) SARE 것을 PTR, 반드시 FE a 2 BS Tee I ALA] 이상 HE aslo WH. 이 2 ee) eel we} Ne UAH AMF 있다 HS TBE + 있 tel aah Ge) Betts 별 aaah, EB AAR, HA Va SH IA el BS AE & 니다, 또한 같은 지구총련 단위들끼리 묶어서 진행하는 WAS 있다, AS 긴부들, 지구총련 ESE 반드시 교육을 Popo 한다 (0)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피해자가해자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사후교욕을 실시한다. > 2차 가해는 사실 무엇이 성폭력인지 잘 몰라서 더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자는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지지받지 못함으로 인해 더 상처를 받게 되기도 한다. 성폭력의 개념과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건 이후 사후 교욕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해자의 동의 하에 사건이 해당 공동체 안에서 공몬화 되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AA 무조건적 교육으로 인해 원하지 않았음에도 사건과 피 해자가 공개될 우려가 있기 패문이다. --- page 7 --- <참고자료 > 대오 내 성폭력을 근절하자 <127| 전여대협> 대학 또한 우리 사회의 다른 현장들과 마찬가지로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대학 내 성폭력을 근절하고자 학내 여학생 단위들은 학내 반성폭력 학칙제정에 대한 Boles 문제제기를 하였고 대부분의 학교에 반성폭력 Jo] 부족하나마 마련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우나 교수님에게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학칙에 의거해 ARIAS 할 수 있다 력"의 정의 또한 일반적으로 에기하는 성폭력의 정의와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이렇게 특별히 정의하는 이유는 SALA] 내 ATA] 일정한 특징이 존재하며 그로 인해 Azo] 더욱 대두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심각성을 동감하고 척임성 있게 성폭력을 aay 4 그간 대오 Yo] Azo] 일어났을 때, 조직 보위 논리 때문에 이렇다 할 공론화과정 없이 묻허버리는 경우가 Ba, 제대로 책임 있게 해결 되기 보다는 Zo] 흐지부지 되어버릴 패도 있었다. 이에 한총련과 전여다협은 규약을 신설하면서 성폭력 예방과 ㅅ 를 마런하고 성폭력에 대한 일꾼들의 각성을 높여 일꾼들이 해결의 Faz 나설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1. 성폭력을 규정짓는 데 있어서 주의할 점 © 성폭력의 HAA 있어서 관단지점이 되는 것은 '피하자의 경합'이어야 한다 성폭력의 판단 기준으로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에 대한 판별은 상대방인 피해자가 그 행위를 불쾌하게 느끼고 스스로의 Fol] 대한 침해행위로 경험 판 험하는가의 여부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대해 '판단기준이 모호하고 ㅜ관적이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 피해자의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인 성폭력에 대한 판단기준에 대해 '객괜'을 들이댄다면, 얼만큼 만졌는가, 어떤 발언을 했는가 식의 리적인 기준으로 성폭력이 판난되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며, 그것은 결국 피해자의 주관과 사고를 Boe] 무시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re ay 때ㅁ IW @ 성폭력의 형태에 따라 심각도를 규정지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의 심각도를 깅간, 준 강간, GAR, 성희롱 등으로 GAS 구분 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성폭력의 형타에 따라 WEEE 구분지어서는 인된다. 왜냐하면 ABS HAAR asks 것은 각작의 성폭 력의 형타에 대한 피하자의 경험이나 느낌, 폭력을 느끼는가의 여뿌에 대해 문제시하지 않고, 그 행위가 성폭력으로 성립되는지 아닌지의 관단만을 중요시한다는 AS 의미하기 패문이다. 이렇게 HRS 때, 성폭력은 '더 심각한 성폭력과 '덜 심각한 성폭력" 혹은 '심각해심핸) 성폭력'과 '경미한 성폭력"으로 양분된다. 성폭력에 대 한 HAS 파해자의 경험이나 느낌, 폭력으로 느끼는가의 여부가 되어야지, 물리적으로 그 행위가 어떠했던가만을 eh 해서는 ot 뒤는 것이 다 덧붙이자면 성폭력의 심각도를 구분 짓는 것은 가장 극단적인 성폭력에만 논의의 AS 집중시키며 피해자의 경험을 포함하고 있지 RA 것이 Ao] 대한 애기를 MVS 패 흔히 a1 '강간범 on ities or a ai isle 1 2. 대오 내 성폭력 사건의 심각 a Ox --- page 8 --- © 한 사람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ABE 행위가 대오 안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뷔 우리 학생회는 학우들이 a 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지고 ABA Ow 살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BES 하는 조직 이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사업과 투쟁에서 학우들이 주인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꾼들의 ‘ela § 황동이다. 그 SPSL BSS 하는 ETO] ARS] BS WAL 수 있도록 aye 되려 BABE] ARB ASIANA das. BAS] AE 작태를 저질러서야 되겠는가? 상관없이 평소 사람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상대빵의 BS 자신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몸 정도 로 J 성인식이 행동이나 언어로 표현된 것이다 성폭력은, 시람이 자주성을 가진 존재라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무시하고, 자 멋대로 ARIS 성적인 대상으로 전락시켜 바라보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작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바탕해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을 단순한 성적 대상으로 비리보고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결국 피해자의 사람과 조직, 운동에 다한 WLS 완전히 박살내는 행동, 한 사 람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잔인하게 죽이는 행동이다 — @ 당사자들이 LES 정리하고 조직이 깨어진다. 사례들을 보편 '사상이 높고 경험이 Woh 핵심이라고 불리는 남자선배'들이 여학생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러 온 경우가 많이 있었다. 피해를 당한 이는 운동 ue 조직 oe 대한 실망을 안고 운 떠난 경우가 허다하지만 오히려 가해를 한 이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운동사회 cy ! lo; oF So, : 도 많다. 이러한 기풍은결 생산하는 익순환의 고리로 된 것이다. 경우가 BE '사소한 걸 기지고 조직에 뉴를 IY '나를 믿고 한 번 Pope} 며 여기저기서 고동을 다. 조직의 무관심과 관점 없음은 피해자에게 비수로 꽃혀 크나큰 상처가 된다. 이것은 SAS 같이하고자 하는 동지라고 성각했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되고 당시자는 AAS 신뢰하지 못하고 운동을 정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 k 3. 대오 내 성폭력의 사례 A= 대학 선거에서 정후보였던 가해자가 선거운동으로 피끈한 여자일꾼에게 SAS 보이며 학생회실로 자러 오라고 했다. 남자일꾼이 학생회실에 서 자고 있던 OARS 깨워 "뽀뽀 한번만 하자"고 해 여자일꾼은 안된다고 하고 다시 YO] 들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자신을 좋아해서 그런 것 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기해자가 연행되어 구속되는 바람에 그냥 넘어갔다. 그러던 중 피해자는 가해지에 연관된 또 다른 성폭력 AAS 듣게 되었고, 1년간은 가해자를 보아도 외면하고 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ELS 표현할 THO (가해재이 | 없었다 그 후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러내어 자신 피해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셨 가해자가 저지른 또 다른 많은 성폭력 AS 을 알게 되고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가해ㅅ 되었다. 이후 학생회 UO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에 대 해 피해자는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위원회에 AWS 고발했다. 10/인위원회에서는 기해자의 기간 성폭력 사실들이 대중적으로 폭로되 었으며, 폭로된 이후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이 100인 ㅁ re = ‘El ol > vo a 본 a Bb 4r la tu A 고 4] i Li fu aa Li =o . A 모 대학의 핵심일꾼은 자신이 좋아하던 여지일꾼을 Ss] 직책 제인의 명목으로 만나 SS WS 먹였다. 그리고 비디오방으로 데려가 더듬고 키 을 행하였다. 이 Alo] 알려지면서 대학에서는 남자일꾼에 대한 총화사업을 진행하려 하였으나 기해자는 이에 응하지 않으 [ 그 과정에서 이전에도 이러 = | 되기도 하였다 생일널에 주 위 내 들을 설득해 술 취한 여학생을 자신이 데러다준다고 했고, 아침에 술이 7H 여히생은 자신의 옷이 폭력을 경험하는 전반 과정에서 SSS 매우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심지어는 자살까지 7 하생호 그 M = 성각히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NO chal LS = A 모 대학 상활방에 자고 있던 님지일꾼이 옆에 자고 있던 여흑생의 TSS 더듬었고, 이에 놀란 ose 즉각 대처했으나 남지일꾼은 모른 척 했 Ch 이에 대해 여확생이 총여희생회로 신고했고 Sosa} 문제를 제기하, 총학상회 일꾼들 속에서 SES 진행했다. 그리고 남지일꾼이 속한 단 위에 총여희생회 일꾼이 직접 들어가 성쪽력에 다한 기본적인 학습과 토론 및 비판씨업을 진행했으며, 남지일꾼은 성폭력 Aa} 처음에 발뱀했던 --- page 9 --- 것에 대해 반성하며 사과문을 썼다. 일꾼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성폭력에 대한 WSS 진행하고, 가해남학생이 일꾼들 앞에서 직접 자기비판을 진 [ | 생활방에서 자고 있다가 누군가의 손길을 잠깐 =Ral 순간 온몸이 굳는 듯한 느낌이 받았다. 매우 찜찜했지만 자고 있던 중이 생각하고 계속 ACh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꿈이 이니라 자신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AWS 알7 — | OMA 에 분노해 종여학생회장과 자신의 명의로 생활방에 SUES 부칙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여자일꾼은 성폭력을 낭한 이후 반년이 요 진행하던 중 남자일꾼이 자고 있던 여자일꾼의 SS 더듬은 일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가해자가 속한 대학의 종여학생 총여학생회는 해당 단위에 제기해서 문제를 풀려고 했다. 그러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해자는 군대로 도망가 결국 [ A 모 대학에서 생활방 성폭력을 저질렀던 남자일꾼이 단위 히생회장으로 추천되는 과정이 있었다. 이에 대해 총여학생회가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O: 대표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제기하였고, 해당 단위는 그 남자일꾼에 대한 추천을 절회하였다 위의 사례들은 지금까지 실제 있었던 사건들의 극히 일부분이다. 대오 내 성폭력의 GAS 사례들은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알려지지 않고 비공식 적으로 여학일꾼들 사이에서 정리되거나 전여대협으로 바로 신고된 경우들이 많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우리 단위에 는 그런 일이 잘 없나 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대오 내 성폭력은 지금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며, 제대로 된 피해자 중심의 관점과 해결 원칙이 없는 조건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사회정치적 생명에 타격을 입고 있다. 4, 대오 내 성폭력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과 그의 근원 (1) 운동권 조직보위 논리 발생하면 운똥사회의 “KEY 에 치명타를 입는다는 애기를 하며, 이를 쉬쉬하고 덮어두기에 급급하는 것이 운동조직 보 리이다. 기존 사회의 질서와 문화, 구조에 대한 비판세력으로서, 그리고 진보의 이념을 지향하는 운동조직내의 KAYO 상처받아서는 | A289] 것이며 SEH] HEY] gala] 드러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ARI 그간 구성원 Bit Males 등의하고 HAS 온 것이다. 이러한 기중은 일반사회에서도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문제조차 은폐시키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협박과 2자 가해를 가하게되는 상황까지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것은 운동의 EGS 제대로 이해하지 Kel 생긴 문제이다. 운동의 도덕성은 잘못된 문제를 넣어둔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 사건 이 일어나는 그 자체나 그 사건이 외부로 일려지는 것이 조직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AAS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크나큰 문제이 며 때문에 조직에 크나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rN 2, rr SS on ste Je stn re 을 Ol = @ 일꾼들의 가부장적 여성관 oH 보는 시자 여자 대한 HS 일반 MIA BRAVA 크게 AVE I, 누구도 eal AMES ANP] 78 apy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이이기이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어떤 학교들에서는 '우리는 여자는 키우지 않는다' 고 공공연히 애기한다. 남성중심조직에서 주변적 존재로서의 여성들은 흔히 "야써서 키울 필요가 없는 SAS 간주되며, "조직에서 여성을 키우려고 하지 Oe" 문제 는 기업이나 학교 등 사회 일반의 조직에서의 여성 바제 관행과 거의 다름없이 나타난다. BA} 아닌 진보를 주장하는 ASL 사회의 일반 사람들과는 달라야한다. 여성들이 차별받고 힘든 현 상황을 용인하는 것이 보수리고 한다 면 진보적이라 지처하는 우리들은 그 BLS 깨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구타의연한 관점을 버리고 진보로 니이가자. 자 r= @ 변혁관에 대 원 > re Al u --- page 10 --- AVIS 때로는 "BAS 조장하는 BNE, ASE] FYE 페미니즘" 이넘을 "무비관적으로 받아들이는 Bee 매도 여성해방은 계급해방과 민쪽해방이라는 전제 아라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는 다르게 Bao}, ofS] Beaks 차벌의 내용을 너무나 '사소 한' 일로 대하면서 여성해방은 Fes 이루고 난 다음에 나중에나 하자는 Aloe 받아들이는 CHASE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RE 하의 YP o] 대한 AAS 하는 여확성운동가들의 예리한 눈을 불편하하면서 과민하다 혹은 교조주의적이다 피하의식이 있다 등등의 야기 를 하여왔다. 이것은 일정 정도 여성들의 UAE 위해 대 남성 두쟁의 AS 가질 수밖에 없는 LES] 페미니스트적관점을 억제시키 는 역함을 해왔던 것이다. 이 | 민중의 절반인 여성들이 지금 현재 겪고 있는 성차별의 문제를 제기하는 두쟁을 지지하고 제대로 해결해야만 자주성 ASS 위한 FMS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 해결의 과정은, 파해지가 성폭력의 WES 치유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이며, 가해지가 자신의 성인식과 사상의식을 철저히 비판하고 올바 른 AVP} 사상의식을 세위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인 동시어 모든 일꾼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성인식을 비판하면서 ARIS 철저히 주직 AK JOR 대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 주 ㅁ Bs rir ries 때 Ad ES re, oh mir Ac, ㅁ 태 _으 EL 2, sm oe, ro a du of oz, oy oO 2 rots of ko recs 기 = 2, aud --- page 11 --- <참고자료 > 가해자 중심 시회에서 피해자 중심의 사건자원이란 피해의식이라는 오래된 문제와 가해자 중심주의 집 지나친 피해의식이라는 익숙한 말이 있다. 이 익숙한 관용어구는 보통 여성들이 (혹은 여성들과 같이 은페되어 있지만 명벅한 치별을 받 단들이)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지나친 피해의식이라는 맡은 피해자늘에게 심리적으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나치게 과민한 것은 아닌지, 자신이 뭔가 잘못 기 억하고 있는 것은 OAS 끊임없이 검열하게 하는 효과를 거둔다. 그런데 보통 차별할 수 있는 WAS 가진 a 집단들은 차별 당하는 집단이 차 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들을 a 밤에 늦게 SOA), 치마를 너무 짧게 입었다던지, 순결하지 않았다던지 등 차별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거나 혹은 APS 스스로 원했다는 식의 이유들 말이다. 그러나 차별 받는 집단들은 차별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없기 = 집 근 we 받는 이구을 알 수 하는 것이므로 차별 받는 이유에 대해 듣는 것만으로도 차별적 상태에 놓이게 wt 내가 혹시 때문에 문제를 제7 혹시 차별 당함만한 짓을 하지는 않있나? 내가 충분히 싫다고 말했는가? 라는 식의 자책감은 피해자들이 겪는 이중적 고통 중에서도 오래되고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들이다. 여성들이 자신이 겪는 차별과 폭력이 성별 때문이라는 인식을 하고 그것을 발화하게 될 때 흔히 "과민하거나(그래서 님성들의 사회/조직생활에 걸맞지 잃거나)" "지나치게 상상력이 풍부하거냐(절벽증이 있는 공주병환자거나)" 혹은 "여자답지 않다"(페미니스트거나 여자로서 마력이 없거 에 대한 오래된 놀림과 비난들, 여기에서부터 가해자중심주의가 Azle 그 피해 Lp 등등의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피해의식에 대한 가 오래된 것일수록, 그리고 부정적인 인식이 오래된 ALES, 피해와 피해의식을 구분하고 지배젝/남성중심적인 SS 쓴 "객관생"와 "이성"은 더욱 효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가해자중심주의는 피해와 피해의식을 구분하여,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감정이라는 이분법안에 여성들을 가두는 동시에 가해자늘이 저지 = 가해순간의 주관적인 깐단들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게 하는 효과를 거눈다. 그리고 "지나친 피해의식"이라는 말은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두 가지 선택을 안겨 준다. 한 가지는 더더욱 피해자가 되는 것, 다른 한 가지는 입을 다물고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상태"를 가장하는 것이다. 이 때 피해자는 피해자임을 입중하기 위해서는 자신 안의 자책감들과 싸우면서, 자신이 이성적이며 객관적이라는 중명을 해내야만 하는 어려옴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지 못할 바에는 입을 다물어라-라는 것이 바로 가해자 중심주의가 가지는 지나친 피해의식에 숨어있는 경고인 것이다. 가해자 중심주의에서의 피해자 '되기'의 문제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중심의 사건지원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그동안 성폭력 사건이 철저하게 가해자 중심으로 흘러갔다는 것 을 비판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 중심수의'가 그동안 피해자에게 법적, 심리적 지지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피해자 중심이라는 말 자체에만 집중해서 피해자가 자기 마음대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만큼 피해자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은 범죄가 없다는 현실을 쉽게 무시하고 깔이다. 사실 피해자 a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그동안 가해자 SALE 성폭력 사건이 해석되고 설명되고 처리되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폭력 범죄는 유일하게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사실 자체를 비난받는 범죄이다. 또한 성폭력 범죄는 거의 유 일하게 가해자가 sa ARS 밝힐 것을 협박할 수 있 겪는 이후 후유증에 대한 사회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는 현재의 상태는 성폭력 사건을 해결보다는 은폐하기 쉬운 구조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비난하기만 해도 가족과 공동체 내에서 쉽게 자신의 가해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비난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성적으로) 결백한 피해자라는 것이 중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을 때 가속과 공동체는 피해자를 지지하지 않는다. 사실 피해자에게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는 TAZA) 피해자라는 위치보다는 성적으로 무지한 피해자라는 위치를 선택하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께지기도 할 는 범죄이다. 발생율이 세계 2위인데도 신고을이 6%에 머물러 있고, 피해자가 3 사 > fl (0 rir --- page 12 --- 것이다, 가해자 중심적인 사회에서 원하는 피해자가 되는 순간 피해자는 성적자기결정권의 MAS 감수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뼈지게 되는 것이 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개념 규정한다는 의미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는 사건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개념 Sethe 의미이다. 사건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개념 규정한다는 것은 사건어 대한 "해석"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를 때 피해자의 해석을 신뢰한다는 의미이다. 가해자 중심수의의 무서운 점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말 을 할 때 우선적으로 남성의 말을 믿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그대로 보여준다는데 있다. 피해자 중심의 사건지원이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역전 이다. 예를 들어, 화간이라고 하는 가해자의 맡은 피해자의 동의 없이 객관성을 획득할 수 없다. 당사자 중 한 명이 강간이라고 한다면 화간 자 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성폭력 사건을 규정한다는 것은 이렇게 성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자가 보다 강한 객관성을 지닌 해석자의 위치를 가질 수 믿음 . 옥자는 ia 누가 보기에도 명백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자신이 겪 eae 피해마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 사 건은 성폭력이라고 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 그렇지 않다. 피해자는 피해를 해석할 수 변 보다 객관적인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기는 하 되, 변치 않는 고정된 Ee Aes 존재도 아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개넘을 aa 의미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피해자는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다른 길-회피나 부인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이 피해자 위치가 가지는 딜레마가 피 해자로서 자신을 정체화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피해자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갈둥한다. 따라서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지 원을 지원하고자 하는 지지자들은 단지 성폭력 개넘규정을 피해자만이 할 수 있거나 피해자가 규정하는 바에 따라 따라갈 것이 아니라 그 피 지 해를 규정하고 해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서 피해자가 겪는 고통과 상처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생존자를 돕기 위해 지원자가 가져야할 위치 피해자 중심의 사건지원이 가지는 두 번째 의미는 사건지원의 전 과정에서 가해자가 할 수 있는 역할과 책임을 나눈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는 피해자가 가해자 중심의 사회에서의 수똥적이고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사건을 해석하고 해결하는 생존자가 되는 과정과 연 관되어 있 이 부분은 3 지원자들이 생존자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는 부분이다. 지원자들은 생존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의 위치가 아니라 생존자 가 하는 깔을 잘 듣고 같이 의논해나가는 안내자의 위치에서 만나야 한다. 그러나 이런 위치에 대해 생존자와 지원자 모두 혼란을 느낄 수 있 다. 쟁존자가 만약 지원자를 지나치게 의존하게 될 때, 지원자는 자신이 ale 해결하지 못했을 경우 신뢰관계가 깨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 wre 가지게 된다. 그러나 지원자가 가부장적 사회에서 진공상태에 놓여있지 않는 한 생존자가 원하는 그대로의 재빨리 할 력을 갑자기 가지게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방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 안전한 것들만을 기계적으로 제공하는 Zl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그 테트 - a 지원자의 목표 중의 하나라는 것을 전달하고, 현재 이미 그 한거 } mr 해결을 10 > fe; | 지원자의 역할은 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서로 또 반대로 생존자가 지원자를 전혀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어려움도 있다. 피해자 심리의 특징 중 하니는 문제를 회피하거나 부인하고 분 노를 내면화하는데 있다. 이 내면화된 분노의 대상은 흔히 자기 자신이 된다. 그리고 때로 우울중과 죄책감, 무력감 등을 극복하기 위해 지원자 |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자신의 무력함과 우울중을 극복하기 위해 지원자 역시 무력하게 만들면서 피해자의 위치를 전도하려 하는 것이다. 지원자로서 생존자의 분노의 표적이 되어 본 사람이라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생존하기 위해 피해자들이 하는 극복의 행 똥들이다. 이럴 때 지원자는 자기 자신 혹은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쏟아내는 분노는 상황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AG ohlehs AG 설득하고 HEA 489, PALS oleh art 있다 2, --- page 13 --- u Lu fu J ㅁ 가해 중심 사회에서 피해생존자 중심으로 AIS 지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해 중심 사회에서 피해 경험을 드러내고 싸우는 어렵지는 않아도 말이다. 성폭력 피해는 "내는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침범시키고, "냐"는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는가에 대호 화과정을 침범하는 고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자는 지지자를 만나는 7POw, 지원자는 자기 성장과 성찰의 기회로 생존자를 만날 때, 그 만남이 개인성과 관계성을 목원하는 과정이 될 때, 우리는 성폭력 피해의 극복이라는 오랜 여정에서 치유의 희망을 빌견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ky [원 WW > o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