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 51-여성의 역사를 다시 쓴다-1회 여성 역사기행
- Summary
- <1> 1회 여성역사기행 단장 인사글.. <2> 전여대협, 총여학생회는? .
-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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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1> 1회 여성역사기행 단장 인사글..
<2> 전여대협, 총여학생회는? .
<A> 지지하고 후원해주신 분들 .. … … …………………………………………ㅇ……………………
<5> 1회 여성역사기행 세부 프로그램 .….
<6> 인물과 주제별 토론 도움 자료
-일본군 '위안부' ..
-윤회순 .. :
-신사임당 ..…
<7> 강연을 들을 때 00 -
-나레석의 자유에 관한 여성학적 접근:“여자도 사람이다"와 사람이 되는 길로서의 예술 ........
<8> 함께 부르는 노래
-달려달려
-평화만들기
<9> 함께 읽어볼까요? - 책소개
<10>우리 또 만나요 vase
-해방 59주년 맞이 평화주간 “평화와 만나고 노래하며, 꿈꾸다” .
<11> 매일 나의 활동을, 내가 Ll 것들을.…! sess
<12> 우와 반갑습니다. 전화번호 e-nail 적기
……ㄴㄴㅇㄴㅇ
…ㅇ600 ㄴ…ㄴㄴㄴㅇㄴㅇ
…8ㄴ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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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회 여성역사기행 단
전남대학교 총여학생회장 10기 전여대협 의장 죄최영순
여성의 역사를 알아보겠다고 전국에서 모이신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전국여대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전남대학교 총여학생회장 최최영순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동안의 역사는 남성의 역사이며 여성들은 배제되어 있었다구요. 그
래서 요즘에 1676[0[》라는 말도 쓰는데 그녀들의 이야기, 여성들의 이야기, 우리들 의 이야기! 우리가 여
JS] FAS 써볼까요?
올해를 1회로 여성역사기행을 시작합니다. 올해는 '여성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제목으로, 그 1 동안의 역
AL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인물들을 찾아보고 그녀들의 YAS 여성의 시각으로 알려내고 그녀들
의 삶을 재조명 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 동안의 세월동안 여성들은 당당한 Fo] 아니거나,
존재감이 없거나 남성들을 보조하는 역할로 존재해 왔습니다. 여성 역사기행을 통해 만나갈 나혜석, 허
Waa, 윤희순, 신사임당,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SS 미리 알아보면서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지만 다
양한 활동을 해온, 주체적 여성으로서 사람으로서 살아왔던 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을 “Ase. 여
성역사기행을 we Ae 알게 된 BSE 계십니다. 이분들 말고도 더 많은 분들이 계시겠지요! 이렇
게 드러난 대표적 인물들 뿐 아니라 자기 생활에서 하나씩 바꾸어가며 노력한, 역사를 일구어온 여성들
을 생각하면 셀 수 a 많을 테지요!
우리의 활동으로 여성인물들을 더 많이 알아가고 알려내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여성 역사 기행이 처음이라서 부족한 것도 있고, ASE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위의 여성 선배들도
우리가 지금 처음 하는 Bald 최초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이라는 발결음을 We 것입니다. 우리도 그
USAR 여성들의 당당한 He 위하여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세나갑시다.
여성역사기행을 통해서 우리가 세상의 절반, 역사를 책임져 왔던 당당한 여성임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
으면 합니다. 올해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더 많은 여성 선배님들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
입니다. | -
4박 5일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과 여성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봅시다.
아리아리~~~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률 기억하고, SAD 나의 노력을 더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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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여대협, 총0 =
총여학생회는 학교의 모든 여학우들을 대표하는 기구랍니다. :
여학우들이 대학생활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집단적인 Ys 모으고 서로 도울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총
여학생회라는 것이 만들어졌죠.
그렇기 때문에 총여학생회는 여학우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고 사업으로 집행하는 자치기구랍니다.
특히 대학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요소들이 많답니다. 대학 내 성차별적인 BAS 여학우들 스스
로 풀어가기 위한 활동을 하는 곳이 바로 총여학생회죠.
모든 여학우들은 총여학생회 회원이랍니다 «Ve 총여학생회는 매년 총여학생회 성원인 여학우들의 직
접선거를 통해 회장, 부회장을 선출합니다.
구체적으로 뭘 하는 곳인지 궁금하시다구요? ^6^
구체적으로는 학내에 무수히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을 근절해나가기 위한 SEE 하구요, 학내에서 여학
우들이 소외되는 남성중심적인 문화를 없애가기 위한 노력들도 합니다. 여학생휴게실과 같이 여학우들
의 복지문제를 함께 풀어가기도 하고, 심각한 여대생 취업의 문제에 대해서도 여학우들과 함께 고민하
기도 한답니다. 올바른 성의식을 확산하기 위한 활동도 하구요. 사회의 갖가지 여성문제나 사회문제들,
이를테면 호주제, 성매매, 통일, 노동 등과 관련한 활동들도 한답니다.
무엇보다 학내에서 학우들이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 어렵거나 고민되는 것들을 함께 얘기하고 작게나
마 풀어나가기 위한 SES 하죠. AA~ 워낙 다양한 SES 하는 곳이라 일일이 다 얘기드리기가 OF
렵군요*^^* ^! .
_ 떤여대협(전국여대생대표자협의회)' 는 말이죠 ~
그렇게 대학마다 있는 총여학생희가 모여서 전국여대생대표자협의회가 되는 것입니다. -
전여대협은 '전국여대생대표자협의회'의 준말로 AS] 각 대학 총여학생희장들로 구성된 협의기구입니
전여대협은 여성으로서 살아가는데 문제로 나서는 봉건적인 Ye 사상, 가부장적 인석, 자본주의의 성차
별적 논리를 없애고 여성의 자주적인 힘으로 양성평등 인간해빵이 된 세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50만 여
학우의 자주적 대중조직입니다. -
올해로 전여대협이 10년을 맞았습니다.
10년 째 되는 해이다보니 처음 시작하는 1회 여성역사기행이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10년을 맞아, 그간 건준위 6년과 본 조직 건설 이후 10년 동안의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활동을 모
색해보며 더욱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http://iydh.jinb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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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성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은,
K 여성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은 》 - 「우리 여성의 역사』 중에서
1) 여성사란 무엇인가?
여성사란 여성들이 과거에 살아온 AS 드러내는 역사 서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라 하면 일반
적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를 포함하는 인간의 역사를 말한다. 따라서 남성과 따로 떼어 여성만의 aye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왜 여성사를 따로 써야 하는가.
이는 그간의 역사 연구에서 여성들의 삶이 거의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거 여성에 대해
아는 것은 선덕여왕이나 문정왕후 등 정치적 역할을 한 여성, 또는 신사임당이나 유관순 등 몇몇 뛰어
난 여성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이 그들 시대를 대표할 수는 없으며, 이들을 통해 여성들의
삶이 역사의 발전과 함께 어떻게 달라져왔는지를 알 수도 없다. 결국 우리가 여성사를 해야 하는 이유
는 그간 역사에서 배제되어왔던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복원하여 진정한 인간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함
여성사의 대두는 여성운동의 전개 과정과 밀접한 Bas 갖는다. 서양의 경우 여성사가 처음 시작된 것
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무렵에는 각국에서 여성 참정권운동이 일어나 교
육-직업-정치와 같은 기본적인 시민권의 불평등을 시정하려 하였다. 이러한 여성운동은 여성 Basa 원
인을 찾아 과거로 ES 돌리게 하였고, 이것이 여성사가 등장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는 아직 전문 역사학자보다는 여성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여성사가 쓰여지는 수준이었다.
1960년대 말 미국에서는 흑인 인권운동, 월남전 참전 반대운동 등 여러 진보적인 운동과 함께 여성운동
도 재등장한다. lds] 참정권운동을 통해 비록 Bold AER 차원에서 여성의 age 신장되었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의 고양과 함께 여성사에 대한 관심도 보
다 깊어지고 넓어졌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곧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그리하여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학
계에도 BES 미쳐 전문 역사가들에 의한 여성사 연구가 시작되고, 대학에서도 여성사 강좌가 개설된
다. |
그런데 여성사 연구의 AAS 역사학계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5,60년대 들어 기존의
정치사 중심으로 탈피하여 다양한 형태의 사회사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정치나 외교
뿐 아니라 생활, 풍속, 심성 등 여러 분야가 의미를 갖게 되었고 여성의 역사 연구의 Fae 삼는 것도
가능해졌다. | | |
물론 여성사가 사회사에 포함되는가의 여부는 논란이 되고 있다. 몇몇 사회사가들은 여성사를 사회사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지만 여성사가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사회사에서는 계급을 가장 중요한 대상으
로 놓고 있지만 계급만으로는 여성의 역사적 지위를 충분히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같은 계
급이라도 남녀의 지위가 다르며, 계급만으로는 여성 억압이 왜 그렇게 오래 지속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할 수도 없다. 따라서 여성사는 '계급'뿐 아니라 '성'이라는 또 하나의 범주가 요구되며, 그런 면에
서 여성사의 존재 이유가 설명될 수 있다. ' | oe
2) 여성사의 관점과 서술 내용
여성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yes 담는가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여성사 BAS 검토함으로써 SF 있
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여성사'라는 용어만 있는 정도이나 서양에서는 Women's History, Feminist
pHistory, Gender History 동 다양한 표현이 쓰인다. 이들은 의미하는 바도 조금씩 다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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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Women's 1116601》는 여성과 관련된 FAS 담은 역사 서술이면 모두 여성사라 본다. 따라서 가장
폭이 넓으며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라 하겠다. Feminist Historys 여성 해방주의 역사로도 번역된다.
이것은 Women's History7} 여성 억압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나 여성 해방에 대한 전망 없이 쓰여진 것
을 비판하고 그들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즉 여성 억압의 기원과 작동 원리를 밝히고 그것을 타파하
는데 관심이 없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여성사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다.
GenderFE SUE 1970년대부터 여성학의 영향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생물학적 성과 달리 사회
적으로 형성된 성별 구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Gender History= 여성사가 본의 아니게 여성만을
분리해 다룬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피하고, 성 역할 구분이 역사 속에서 작용하는 다양한 국면을 남녀
+
ft
— 를 함께 포괄해 다루겠다는 의도를 강조한다. 이 YAS 최근 동성애자들의 주장이 확대되는 등 고정된
남여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관습적인 남녀 구별이 여성
아니라 남성에게도 억압적이었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호감을 사고 있다. 이는 여성사의 폭
넓혀주었다는 면도 있으나, 여성억압의 규명과 AAS 지향하는 여성사의 정치적 목적으로 모호하게 3
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처럼 여성사의 명칭이 다양한 것은 여성사의 개념과 범주가 연구자들 간에 합일되어 있지 않음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사 연구가 보다 발전하고 논의가 활발해지면 여러 용어들이 나올 것이라
겨진다.
그간의 여성사에서 다룬 내용들을 서양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가장 BUA 것이 여류 명사의 전기
류이다. 좋은 가문의 여성들, 예술이 AS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다수 여성들의 삶과 유리
되어 있어 당시 역사 속에서 여성의 보편적인 삶과 지위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둘째로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여성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예컨대 노예폐지운동
이나 노동운동에 여성들이 어떠한 기여를 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간 알려지지 않은 여성
의 역할을 밝히고 역사적 사건 자체에 대한 이해도 확대한다는 FH] 있으나, 여성을 주체로 놓고 여
성의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셋째로는 기존의 남성적인 역사관에서 탈피해 여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역사에 대해 새롭게 해석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선 여성 참정권운동이 나 산아제한운동 등 역사적으로는 별로 평가되지 못했으나
여성들에게는 중요한 사건을 찾아내 재평가하는 방법이 있다. 또 이전에는 역사 서술이라 여겨지지 않
았던 분야인 임신출산-성애-자녀양욕에서의 유대관계 혹은 여성에 대한 태도 변화 등 사회적 Ags
구하는 방법도 있다. 대체로 여성들의 활동이 공적인 영역보다는 사적인 영역에서 두드러지므로 이
ee SASH 연구하는 것이다.
으로 WE 역사학에 도전하여 시대 TRS 다시 해보는 등 여서의 입장에서 역사를 재해석하는
이다. 일반 역사의 발전이 여성에게도 진보였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간의 여성사 연구는 비록 AVY] 경유지만 그 대상과 방법 면에서 많은 진정이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여성사 연구는 어떠할까.
rot - ‘a
2.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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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
at
r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역사 다시 쓰 쓰2| 》 -20셰기 여성 사건사 서문 중에서
생각해 불 문제
- 여성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 서사에서 왜 여성의 BAS 배제되어 왔는가?
- 역사에는 성별성(660061)이 존재하는가?
1. 여성의 역사쓰기
: 기존의 역사를 구성해은 서사에서 wale 여성의 경혐을 발견하여 재구성하려는 기획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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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대 남성들과는 여성들의 경험이 다른 것이었기에 여성의 경험은 그 자체로 기존 역사 서술
의 일관성을 깨뜨리는 아포리아(300018: 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난제, 화두)가 되었다.
여성들의 '타자화'라는 발견은 남성 중심적 역사 쓰기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기존 역사 발전의 과
AoA 여성들이 주체가 아니었다는 SAY 수도 있다. 그래서 기존의 역사를 거부하면서 특정 여성에
대한 경험만을 다루게 되었다. 이는 특정 여성의 경험만을 편애하여 여성과 사회가 BS 포괄적이고
다양한 AAS 보지 못하게 하였다. 즉, 자체의 계급적 분석을 결여한 채 특정한 여성들의 역사만을 강
조하는 함정을 갖고 있는 것이다. | ‘
2. 여성사 연구의 출발
기존의 역사가 어떤 ASS 통해 GI] 역사로 상징되어 왔는지, 역사가들이 상징 권력과 지식 생산
의 과정에서 어떻게 특정하게 선택된 사설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WS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wl
판의식에서 출발한다. 또한 그 안에서 여성 GIS 의미화하는 이론적 ads 함께 여성들의 다양한 경
험을 획일화시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3. 여성의 역사를 사건사로 접근한다는 것의 의미
: 사건사는 '총체적인 여성사'라는 Sal 접근할 때 겪게 되는 어려움과 막막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효과적인 형식이다. 어떠한 일이 하나의 사건이 된다는 것 자체가 정치성과 역사성을 담고 ase 발견
한다. 사건을 사건이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것을 비정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어떤 질서들에 의해서인데,
우리는 그것을 일상의 성별 정치학이라고 한다. 정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일상의 성별 정치학이 여성의
삶의 어떤 부분을 어떤 방식으로 조직하고 있는지, 그 방식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
다. 또한 이러한 사건이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통해 as 둘러싼 담론의 역사성도 있음
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담론의 변화) 역사란 '있는 그대로의 것'이 아닌,
입장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며 그것들이 서로 경합하는 담론 투쟁의 장이다.
- 20세기의 의미: 한국의 20세기는 근대의 발전 논리에 입각한 인과적 시간성을 받아들이면서 급속ㅎ
A 적응해나간 시대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역사의 '진보'와 '변화'라고 이야기되는 근대적인 개념
여성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음 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론적 비관주의와 정치적 허무주의는
보수적인 정치적 전망을 낳는다. 여성들의 사건을 복원하면서 여성들에게 어떠한 의미였는지 재조명한
다. 또한 단일한 서사 강요가 아니라 사건들을 병렬하는 방식으로 전개했다.
ob
이
《 여성시를 공부하기 전에.)
: 역사 속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모습을 연구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운동의 발전과 관련 지어 보게 되는
데 그 이유는 현실 속의 억압과 모순들이 제기되다 보니 그 바탕에 역사적인 사실들과 관련하여 보게
1. 세계적 SS |
1)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함께 만들어 냈으나 이후 인간의 권리를 찾는데 여성이 포함되어있지 않았
다. 이때부터 서구 페미니즘의 시발점으로 본다.
ㆍ 올스톤 크래프트 "여성 권리의 g3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2) 19세기 후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이 생겨나면서 다시 여성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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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정권 운동" 대부분 부르주아 중산층 여성들이 주축이 되었다. 굉장히 전투적으로 격렬하게 했다. 이
들의 주장은 주로 제도적, 형식적 권리(교육, 정치 참여 등)를 보장하라는 내용이었다.
3) 20세기 초: 1차 세계 대전 무렵. 전쟁의 경우 대량 학살이 이루어지면서 모든 인력 동원이 요구된다.
여기에 여성의 동참을 국가가 요구하게 되고 여성들은 그 대가로 여성들의 권리를 요구하게 된다.(제 1
차 여성운동) 이때 참정권과 교육의 Ads 획득하게 된다. 여성의 대학 입학도 이때부터 가능하게 된
다. 그러나 이후 다시 여성 운동의 SH] 끊기게 된다.
4) 1960년대: 서구에서는 사회적 변화의 시기가 된다. 6.8 혁명이나 흑인 인권 운동, 베트남 참전 반대.
반전 운동과 히피 문화가 확산되는 등 사회에 저항하는 문화와 운동들이 주를 이루며, 이 '시기에 제 2
차 여성운동도 일어난다.
= 제도적 평등은 이루었을지 모르나 여전히 문화, 사회적 관념들은 이전과 그대로 유지되는 한계를 갖
Al 되었다. 이후 여성들만의 SES 시작하게 된다. 레즈비어니즘, ao SS 강조하게 되며, 현실의
억압들이 어디서 기원하는가를 역사 속에서 찾게 된다.
2. 우리나라의 경우 |
: 우리나라의 경우는 제국주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서구와 다른 근대화의 경험과 배경을 가지게 된다.
여성운동의 경우 1980년대에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되는데, 그 원인은 대학생 중 여학생의 수가 급중하
면서 자의식과 요구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이것이 학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 두 번 째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터지게 되면서 현실 속의 문제뿐만 아니라 역사, 여성사에 관한 Baad 생겨나기 시작한
다.
3. 여성사의 기념
: 근대 학문 도입이 대부분 서구에서 도입되면서 번역에서의 : 차이가 생기고 여성사를 바라보는 입장
이 다양해졌다. 특히나 이러한 입장들은 우리 사회의 SASS 반영하게 마련인데 각각의 용어를 Fe
그 인식들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 Women’s History-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 포괄적인 개념. 여성이 BE 억압에 대한 여성의 시각으
로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여성을 대상화한 연구일 수도 Wd. (ex: 이능화의 '조선해어
화사'의 경우도 이러한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다. 기생에 관한 역사물인데 신여성을 타락 So]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2) Feminist History- 1)의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시작된 것. 여성해방 관점에서, 여성을 역사의
주체로서의 관점으로 연구. 가부장제 성립 과정과 폐해, 여성 억압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
나 여성과 남성의 관계, SS 분석하지 못하면서 대안을 내오지 못했다.
3) Gender History- 여성만을 연구하는 것이 여성해방을 가져오는가라는 문제제기로부터 출발. 여성과
남성의 관계(이것을 gender! 표현) 속에서 이해하기 시작.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나 그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들을 표현한 것(그러므로 66%와는 다른 의미의 '성'이다.)
Sex: 생물학적 성. 기존의 남성과 여성의 부여된 역할, 이데올로기 SS VERA FZ 이러한 관념
|들을 유지시켜왔다. |
Gender: 사회분석 범주로서의 66ㅁ06ㅜ. 남, 4 관계 속 불평등의 관계를 표현. 생물학적인 차이 자체가 차
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바꾸어 낸 것
우 i
= 그러므로 여성 차별의 문제는 사회 문화적인 것이다. ("여성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 보봐리)
q #2 도서 ㆍ
"섹스의 역사"- 해부학에서 성기의 모습을 통해 각 시대의 성에 관한 관점들을 얘기함.
고대: one sex modelo] 일원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성을 규정지었다. writ 동일한 USS 갖고
있으나 위치가 다른 것이라고 생각. (그림이 하나로 되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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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two sex modelo] 이분법적 사고 방식. 신은 완벽한 존재이며 인간은 신을 닮아가려고 하는 존재
이다. 이중 남성이 Alo] 더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하고,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 차별은 이 '불완
전'과 성기에 의한 완전 이분화된 '차이'에서 나옴. 성을 굉장히 생물학적인 신의 영역. 본질적인 영역이
라고 생각했다. 즉, 사회, 문화적 관념이 이 생물학적 Bas 반영하게 되었다.(프로이드 "운명이 해부학
이다.")
지금 FAS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성의 BAS 무너뜨림. 우리는 Genderd 의해 끊임없이 영향받
아 왔고, 실제로 우리 안에는 ㅁ개의 Yo] 존재한다. .
4. 여성사 연구 방법론 |
1) "여성 명사"의 역사- 여성 위인 전기를 저술하기 시작. 사희적으로 유명했으나 기존 역사에서 Bap
되었던 사람들도 많음. 그들 다시 복원시키고 발굴하는 작업을 함.(예를 들어 나혜석)
2) 공헌사- 혁명, 민족해방운 큰 사건들 속에서 여성들의 공헌한 바도 있었고, 여성들의 참
여가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을 발굴함.
여
= 장점: 기존 역사 속에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역사적 사실의 이해를 확대시켰다.
단점: 기존 역사에서 중요하다고 얘기되는 것만 다루게 된다. 특히 그 중요함이 주로 남성중심적으로
쓰여진 것에 대한 전복적인 의미를 가지지는 못했다.
3) 여성에게 중요한 사건 재평가- 산아제한운동, 성매매 반대, 아내 구타 추방 등 여성에게 있어서 중요
한 사건들을 해결해갔던 운동을 중심으로 쓰여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여성인권 운동사")
= 그러나 여기까지는 기존의 역사 자체를 뿌리 A 혼들면 안 된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주류 역사학
부분의 여성사를 넣는다 해도 성평등적이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미 주류가 성차별적인 관점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역사학에 대한 비관>
: 역사의 주체를 누구로 보고 있는가 보았을 때, 기존 역사학은 여성의 역사를 그들과는 다른 별개의 것
으로 여겼으며,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들에 관해서만 기록하였다. 특히나 과거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고,
가부장제에 의해 여성들의 성과 출산을 통제하고 횡령하면서 남성들의 권리를 점차 제도화 해갔다. 이러
한 제도는 성적, 사회적, 경제적 관계를 변형시키면서 모든 이념 체계를 지배했다. 따라서 성별에 대한
일련의 묵시적인 가설들을 수용하여 역사 발전과 인간 사상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성별의 비
유법은 남성을 표준으로 보고 여성을 변종으로 다루었는데, 예를 들어, 여성이 신체적. 심리적으로 연약
하며, 수동적이고, 감성적이라는 등의 여성의 이미지는 수세기에 걸쳐 창조 형성된 여성 정체성이다. 이
것은 그 어떠한 생물학적인 SAS 이루어진 논리가 아니라 그 사회에서 만들어낸 이미지, 가설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법칙 속으로 간주되어 왔다. 또한 남성들의 활동 영역을 공적인 것으로 여성들의 yas
사적인 것으로 구분 지어졌고, 역사로 Ala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공적인 영역의 것만 다루어짐으로써
역사는 남성에 의해 독점되었다. 또한 사료를 무엇으로 삼는가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기존 주류 역사학
은 주로 실증 자료를 토대로 한 문서 자료 지상주의인 실증 사학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실제 일어났던 사실들이 묵과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네오 yas] 논리에
서도 볼 수 있다. 유태인 말살을 지시했던 히틀러가 서명한 문서 자료가 없다는 논거로 유태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생존자의 증언이나 일기, 편지 등을 자료로 인정하지 않기도
서술하는 데에는 이야기 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권력 관계가 불균형인 곳에서
는 강자의 '현실'이 지배적인 현설이 되어 소수자에게 '상황의 정의'를 강제하게 하는 Yo] 발생하게 된
다. 그리고 약자의 관점에 의해 구성된 '현실'도 존재한다. 이렇게 존재 하는 두 개의 '현실' 속에서 약자
가 말하는 '현실'은 때때로 주변에 조성된 환경(즉, 그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조건) 속에서 강자가 원하는
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을 거역해 지배적인 현실을 뒤집어었는 것과 같은 '또 하나의 현실'을 낳
은 약자에게는 그 자체가 투쟁이며 지배적인 현실에 의해 부인된 자신을 되찾는 실천인 것이다. 이
가부장제 속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동시에 구성된 그러나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이 존
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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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다. 그러나 역사가 과거를 '객관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재구성 하는 것이라면 역사를| ㆍ
--- page 10 ---
4)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기존의 역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ex: "여성에게도 르네상스가 있었는
가.")
5) 아주 새로운 FAS 다룸- 기존의 역사의 BAW 공적, 사적 영역의 구분 자체가 성차별적이다라
는 점을 지적했다. 이미 역사는 공적인 것은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된 부분을 위주로 쓰여졌으므로 이
러한 구분을 없앤 (기존의 역사 관점으로 보면) 사적인 BAS 다루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육아, 출산, 섹
슈얼리티 등의 문제도 그 2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의해 위치와 의미 등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 변화 안
에 역사적 과정도 있는
= 즉, 제도뿐만 아니라 자 변화해야 한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4),5) So] 더 공,사 구분을 공고히 할 위험도 있다.
= "사료비판" 기존의 자료 자체가 남성중심적(주로 왕조 실록 등으로 기록됨.).그러므로 통계 등의 기존
사료에 여성의 활동이나 일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2차 사료(구술, 인터뷰, 일기, 편지 등)이 사
료로 쓰이게 된다. 이전엔 객관적 자료로 인정되지 않았으나 모든 객관적 자료 역시 그 시대의 기준과
FU] 담겨져 있는 것으로 간주되므로 이러한 ASE 사용하게 A.
- 10 -
--- page 11 ---
<4> 지지하고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성공회대 김귀옥 선생님, 고은광순 선생님
그리고 역대 전여대협 선배님들
이외 많은 단체와 분들께서 an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e)
우리 후배님들의 발결음마다 시대정신과 여성의 Yor 한반도 평화와 ede 앞당기려는 기백으로 충
천하기를 바랍니다. ㆍ
여러분께 몇 가지의 눈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첫째는 시대적 높이에 맞춰 사람과 사물을 본다. 현재적 관점에서만 대상을 본다면 영원히 과거는 과거
일뿐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TES 주지 않을 겁니다. 그 시대인의 역사, 사회문화적 HAS 이래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한다면 눈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도 더 we 것을 얻을 것입니다. |
과 여성적 관점을 동시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우리가 역사적으로 쉽
둘째는 민중적 관점
게 만날 수 있는 여성은 양반이자, AYES 여성이 되기 쉽습니다. 엘리트충 출신의 algo] 선각자일
Hee 높지만 민중 edd asa 적박하지만 끈질긴 ge Velde 안될 것입니다. 빨치산 여성
들, 항일무투를 했던 민초 여성들, 민난의 참전이나 항일투쟁의 참전, 일제기 징용-징용으로 인해, 집떠
난 남편을 대신해서 hn 생계를 이어은 억척스러운 우리 여성 어머니가 우리 역사의 이면에 살아 있
었던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 명백히 깨달아 orig 당부드립니다. 0
셋째는 대중적 BAS SANE 안된다는 점입니다. 우리 후배님들이 잘아시다시피 현재 우리 현실은
a 척박하고 그래서 거칠기 Fo] 없습니다. 대중들이 여러분께 보일 수도 있을 '무시'적인 태도를 최근
어느 대학 '농활팀'의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기를 진정 당부드립니다. 그들의 반양성평등적, 권위주의적
태도에 대해 대결적 태도로 접근하지 않고, 그들을 감동시켜 그들의 OFS 성찰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감동이야 말로 ASS 바꾸는 중요한 방식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대중이 둘이 아닐 것
입니다.
사랑하는 후배님들, 제 마음이나마 여러분과 함께 발로서 '여성의 역사를 다시 쓴다'에 실으렵니다.
힘든 여정을 서로 일으켜주고 밀어주며 함께 가시길 바랍니다. 0
여성의 힘으로 한반도 ZH} SYS 앞당기며 양성평등의 민주화를 실천합시다. 김귀옥 드림
과거의 여성들이야 힘들게 살았다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여러분들은 '선배언니'들의 기운을
'함께 해방'을 위하여 더욱 튼튼해져 있을 것입니다.
전여대협 이쁜이들 파이팅!
받아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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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회 여성역사기행 세부 프로그램
“여성의 역시를 다시 쓴다!”
-1회 여성 역사 기행
SAAS] AES 찾아가오자
2ZYES YAS AM /가으로 SAYA
AYE] AS 재조망오기"
1. 행사 취지와 의의
-역사 속의 여성을 찾아간다.
우리 역사 속에 여성들은 그 존재감이 없다.
AS... 그러나 여성억압의 현실 속에서도 여성임을 자랑스러워
인간으로 위치 지우고자했던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들의 활동과 업적을 재평가해보면서 자주적인 여성상을 알려내자는 의미를 담은 전국 대학생 연합
기행을 통해 잊혀진 여성들이 이야기를 찾아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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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들이 당당한 주인이 되고자 한다.
여대생들이 이번 여성역사기행을 YYS 삼아 여성에 대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바탕으로 대학
A, 우리 사회 속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어 양성이 불평등한 사회분위기를 Ale 데 큰 힘을
자기 삶에서 주인이 되고자 한다. 시대를 개척했던 자랑찬 우리 여성선배들을 이어받아 우리들
당하고 주체적인 Ao] 되자는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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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스스로 준비하고 만들어간다.
정해진 판에 참가만 하는 행사가 아니라 모든 일정의 기획부터 가이드, 세미나 준비, 토론, 문화제까지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기행으로서 학생다운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으로 준비된다.
-추억거리가 아닌 여성에 대한 산 궁부가 된다.
단지 좋은 곳을 관광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 여성의 역사를 고민하고 여성문제
자기 삶에서 실천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AAS 내어올 수 있는 기행이다.
|
_ -대학 여학생운동 활성화, 전국대학 학생들 간의 연대와 교류의 장이 된다.
전국에 있는 대학의 여성학 소모임과 학우들이 어우러지는 AVS 만들면서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교
류, 연대의 장이 된다. 이로 인해 대학 여학생운동을 더욱 생동감 있게 활성화할 수 있게 된다.
2. 목표
렐대중적 목표 :
- 대중들에게 여성들의 역사를 알려내고 여성의 자주성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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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발전 과정은 인간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역사의 한쪽 수레바퀴를 AMA
던 여성의 역사를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내고,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역사와 발자취를 직접 체험할 수 있
도록 한다.
- 기행 사업을 통해 대학생들의 사회 참여 의식을 '향상시킨다.
| Ee 목표 |
- 여성학 소모임 구성원, 학우, 여학생회 UPS 여성운동을 생동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여
여학생회 기충단위 활성화를 Red.
- 양성 평등 사회 정착에 앞장 설 수 있는 사람들을 양성한다.
**1회 여성역사기행 세부기획안 - su cous 901 ne 72, oats wear
30일(금) 경계 허물기, 마음 트고 함께 꿈 가꿔가기
**저녁 드시고 오세요
7시 서울 경희대 집결
여성 노래 배우기, 일정과 코스 교양, 조별 모임 (조 편성, 조 이름 정하기)
8시 BE 강연: 여성의 역사에 대한 강연 - 정해은 . 성공회대 강사
10시 여성의 역사 관련 토론
11시 여성역사기행 참가의 각오 글로 쓰기 - 글 쓴 거 조 형
전체 참가자 인사 - US 두 개를 만들어서 촛불 들고 안쪽 원이 도는 방식으로 (촛불한마당)
조장들이 모여서 하루 평가 진행, 다음날 일정 공유
12시 경희대 숙박
31일(토) 공동체의 발견, 관계 만들기
7A) 기상
8시 BE 아침식사
QA] 반 '1회 여성 역사 기행' 발대식 진행
10시 반 여성사 전시관으로 이동
11A 여성사 전시관 도착(서울 대방동)- 여성의 궤적 둘러보기
(전시관 규모가 작은 BAS BS 2개로 나누어서 진행, 총 소요시간 3시간. 한 Bol 여성사
전시관을 둘러보는 사이 다른 Bo] 나혜석 관련한 1시간 분량 다큐멘터리 시청과, 전시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시청하는 것으로 하고, 점심을 팀별로 먹음.)
A . B
11시 여성사전시관 상영 영화 관람 여성사 전시관 관람
12시 여성사 전시관 관람 나혜석 다큐멘터리 시청
1시 나혜석 다큐멘터리 시청 점심
2A 점심 여성사전시관 상영 영화 관람
3시 수원으로 이동
4시 강연: 나혜석의 쟁애와 예술 그리고 여성해방론 (박계리 선생님) - 수원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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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반 나혜석 거리(수원시 인계동), 나혜석 생가터 방문 - Ga 다시 보기 (나혜석 기념사업회 유동
준 선생님)
(시간 소요에 따라 화령전, 포교당 SS 더 방문할지 결정 예정)
7시 숙소로 와서 저녁식사
9시 Ya 관련 조별 토론 세미나
조장들이 모여서 하루 평가 진행, 다음날 일정 공유
12시 경기대 숙박
1일(일) 가슴 펴고 어깨걸고 세상 속으로
6시 기상, 아침식사 .
7시 주제 발제(일본군 '위안부' 문제)- 전시 성매매, 성폭력의 내용, 할머니들께 드리는 그림과 편지
준비
9A] 식사
10시 광주로 이동
11시 일본군 '위안부'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 - 일본군 '위안부'를 현재에 i" 명하기
팀별로 각각 1시간씩 역사관 돌아보기, 상영관에서 '일본 본군 위안부 관련 영상 시청
1시 할머니들과 함께 자유시간, 그림과 편지 드리기
2시 춘천으로 이동 (차안에서 점심밥 먹기)
5시 의병 윤희순 의적비(강원도 춘천시 남면 발산리), 생가터 방문
6시 반 숙소로 이동 |
7시 저녁식사
9시 윤희순 관련 주제 토론
10시 공동체놀이 - 대안생리대 만들기
조장들이 모여서 하루 평가 진행, 다음날 일정 공유,
12시 강원대 숙박
2일(월) woman power 믿는다
6A) 기상, 아침식사,
7시 BBLS 이동
10시 팀별로 허난설헌의 생가 둘러보기, 소나무 숲 산책
12시 솔밭에서 강연 (강릉 여성의 전화 이혜련 회장님), 즐거운 OX 퀴즈대회, 허난설헌 백일장 진행
2시 잔디밭에서 조별로 식사
3시 허난설헌 주제 토론 、
4시 경포대 해수욕장 -중간 힘 다지기 조별대항 체육대회, 자유시간
6시 숙소로 와서 식사 -
9시 나의 .자서전 쓰기, 인생살이 이야기 나누기
10시 신사임당 다시 보기 주제 토론
조장들이 모여서 하루 평가 진행, 다음날 일정 공유
12시 강릉대 숙 숙박
3일(화) 여성의 삶을 현재에서 재현하다
6시 기상, 아침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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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신사임당 생가 오죽헌(강릉시 죽헌동)-시;글씨-그림에 능했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예술가.
104) FES 이동 (차안에서 점심, 통일기원 쪽지 쓰기) - |
3시 임진각(과주시 문산읍 마정리)- 걸어서 임진각까지 가자! -걸어야 할 코스-문산읍에서 10100
도보로 2시간
5시 임진각 국민관광지 둘러보기
코스: 망배단 - 망배탑 - 연못 - 자유의 다리에서 희망쪽지 꽂기
6시 서울로 이동
7시 저녁식사
9시 여성과 통일에 관한 주제토론
10시 뒷풀이
조장들이 모여서 하루 평가 진행, 다음날 일정 공유
12시 한양대 숙박 -
4일(수) 여성이 새로 짜는 세상, 다시 함께 가자
7A\ 기상, 식사
9지 수요시위 준비- 사회, 문예공연, 피켓 등 선전, 정치발언 준비, 8 14 평화한마당 문예공연 준비
11시 일본대사관으로 이동
12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 Aas 위한 수요시위 주관 및 참가
2시 식 (장소: 한양대, - 마지막 총화 마당, 모범단원 시상, 기행증서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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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식당 사정과 일정에 따라 조금씩 시간은 변동될 수 MSS 미리 공지 드립니다.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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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물과 주제별 토론 도움 자료
(일본군 '위안부 》
0. 들어가기 전에..
(1) 용어의 문제
: 일본군'위안부'란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일본군'위안소'로 연행되어 일제에 의해 조직적으로, 강제로, 반
복적으로 성폭행당한 여성들을 MAE.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이들을 정신대라고 불러왔다. Aaldde
ARS 이름 그대로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PAS 의미이다. 식민지 조선에선 1940년대 남녀 각 조직
에 정신대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시작하였다. 정신대라는 용어가 법으로 제정, 일반화된 것은 1944년 여
자정신근로령이 제정되면서부터였다. 여자정신근로령에 의해 조직된 여자근로정신대는 원래 남성노동력
이 부족해지자 여성까지 Sesto] 나가 일하게 한 노동대이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는 [여자근로정신
대]와 [일본군위안부]제도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일제 당시에나 현재까지도 한국에서는 정신대를 =
위안부'라고 인식해 왔다. 당시 여성이 일제에게 끌려간다는 것은 곧 순결을 잃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자근로정신대로 간 여성 중에 일본군위안부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군'위안부'가 된 여성들을 가리켜 정신대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일본군은 이 여성들을 그밖에도 '작부(64
@),' '창기,"'추업부' 등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런 용어들은 이 AES 만든 일본군의 일방적인 인식을 보
여줄 뿐 피해자 So] 시각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최근 국제 PES 통해 Al '일본군에 의한 [
노예(66×4315137615)]'라는 용어가 그 BAS 가장 잘 드러내는 용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
본군'위안부']는 당시 쓰이던 역사적 용어로서 사용하고 있다.
'
=
군
붙여
(2) 시대적 배경
Geto] 이른바 군위안부 Bae 만들었던 시점의 식민지 조선 내의 여성들의
가부장적 가족구조와 가족법, 이중적인 ARIAS 여성의 가정 내 위치는 조선시기 보
였다. 식민지 상태에서 SES 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된 데다 여성노동자는 일본인 남성의 1/4, 일본
여성의 1/29 임금을 받았고, 유년여성노동자는 일본인 남성의 1/7밖에 안 되는 저임금에 시달렸다.
게다가 노동자로 취업하는데 이용하던 일종의 직업소개소들은 매춘업에 여성들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소개소업자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들을 모집하여, 이익이 많이 남는 Meg 넘
하던 일
성들
또 일제가 공공연히 매춘을 인정하고 Bane
2
=
으
감독, 관리하는 공창제도를 이식한
] 후 공공연히 부모나
남편 등 친족에 의한 여성 매매, 즉 인신매매가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사기수법에 의한 광범한 인신매
매가 조장되었다. 특히 wAdeeoe 식민지 조선은 대타격을 받았고 이후의 전시체제 아래서의 식민
지 조선 여성들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일제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SS 비롯한 침략전쟁을
되고 장기전으로 들어가자, 일제는 통제되지 않은 강간에 의한 성병확산을 믹 동 군
인과 '군위안부'를 FLEA 군의 사기 진작 등 효과적인 군사활동을 Ase 중요한 목적을 두고 군
'위안부'제도를 만들
이렇게 성립한 일본
연한 heen 여
(3) 위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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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 주도의 군위안소는 이미 청일전쟁부터 있었지만 일본 육군성이 본격적으로 체계적으로 군위안
소 설치한 것은 1937년 말부터이다. 중지나방면군, 육군성 병무국. 의무국 등에서는 위안소를 설치하는
목적이나 군위안소의 경영 감독과 군위안부 동원 및 모집인원에 “ae one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점.
령지뿐 아니라 격전지마다 군위안소를 설치하려는 계획도 미리부터 세우고 있었다. 한마디로 군위안소
는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이 기 하며 인권을 유린당한 공간이다.
위안소는 일본군 문서상 '군위안소', '군인클럽', '군인오락소', 혹은 '위생적인 공
시기, 어느 지역, 그리고 점령지이냐, 격
(0
중변소' 등으로 불렸다.
전
위안소의 크기나 형태는 일본군이 어느 지이냐 ,등에 따라 달
랐다. 군부대가 주둔지에 신축하기도 하고, 원주민 가옥을 고쳐 이용하기도 했다. 부대가 이동하거나 전
ASA 때는 군인 막사나 초소, 참호, 군용트럭 SS 사용하기도 했다.
위안소에는 일본군'위안부'와 관리자와, 그곳을 출입하는 군인이 있었다. 위안소 안에는 군인의 군표나
돈을 받는 접수처가 있었으며, 이곳에서 삿쿠와 막휴지가 돈과 교환되기도 하였다
위안소는 크게 일본군의 군위안소 운영방식이나 이동 여부에 따라 그 형태를 나눌 수도 있다. 예를 들
어 군직영, 군지정 위안소 FOB 구분하는데, 군위안소 운영에 가장 깊숙이 개입한 것이 군직영 위안소
이다. 군이 감독 통제한 것만이 아니라 운영과 관리를 직접 한 것이다. 여기에는 군속이나 군고용인이
운영하는 것도 포함된다. 중일전쟁 초기나 전선지역에 많이 셜치되었다. 군지정위안소는 군이 설립한 위
안소나 민간 매춘시설을 지정하여 경영은 민간에게 맡기고 Cel 감독과 통제만 하는 것이다. 동남아시
아에선 곳에 따라 현지 일본인에 의해 조직된 사업통제회, 기염연합, 실업단을 내세워 이 시설의 책임자
로 삼았다. 어떠한 군위안소라도 이를 관리 감독, 통제한 것 은 일본꾼이었다.
오바
1. 일본0| 조직적으로 전시 강간을 자행한 전쟁 범죄
1) 강점한 나라의 여성들을 군수물자처럼 대규모로 동원하여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필요가 없어지면 주저 없이 폐기처분하였다. 감시와 학대, 쌓여가는 빚, 그리고 지속적인 성폭력
과 성병.
2) 전시 강간: 전쟁이라는 ‘BA OA 수 없었던 ‘ES 지나친' 행위로 간주되어 민간인 학살과 함
께 종종 면죄됨. '전시 강간' 패러다임 때
0) 남성의 권력지배를 과시하기 위한 강간. 특히 전시 강간은 그러한 복수성(윤간)에 특징이 있으며 약
자에 대한 SAS 통해 연대 AAS 확립하기 위한 '의식'. (이러한 이유로 전시 강간은 종종 '관객'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 '적' 남성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모욕이며 자기 힘의 과시. '강간'은 상대국 남성에게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효과.
> 여성의 인권 문제나 성폭력(전시강간)의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겨레의 아들, 딸을 낳고 키
우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이 일본군에 삐앗김으로써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다는 논의 방식으로 다루어졌
다. 식민지 AVS 민족경쟁에서 승리한 자에게는 전리품으로, 퍼식민자에게는 지키지 못한 민족의 자
산, 민족의 도덕 으로 각인됨. :
2. 일본군 '위안부 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
© ‘THE 파러다임
: '위안부'를 정당화하기 위해 종종 쓰이는 논리가 '매춘' 패러다임이다. '업자 간여'와 '금전 수수'를 이
유로 들어 본인의 '자유 의사'를 전제하는 견해. 그러나 모집하는 과정의 자유 의사 유무 문제와 금전
수수 문제는 별개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자유의사의 문제 -
: 한국의 증언자 19명 중 ‘AQ 사기'는 12건. ("좋은 돈 벌이가 있다', ‘AB Ao] 있다.'는 감언에 속
아서 갔던 사람들..) 또한 강제징용 당한 사람도 많았다.
,2) 금전 수수
-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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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전을 받은 사람은 3명인데, 그것도 일본군이 발행하는 군표로 지불되어 패전 후에는 종이 쓰레기
ㅁ 수수는 강제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강간한 후에 억지로 돈을 쥐어 준다고
은 아니다. 일부는 Belo] 아닌 가족이 대가를 받기도 했다.
(1) 일본군 '위안부' 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
1) 일반 강제 징용과의 차이 |
: '위안부'가 일종의 강제 징용이며 또한 성 노동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정신 보국'에 대한 전후 무효가
되어 버린 군표 보상을 청구하면 그것으로 끝날 일이지만, '위안부' 문제는 '강제 노동' 일반의 보상 문
AAA 진행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매춘'은 '추업'이나 '천업'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본인의
‘AR 의사'가 갖춰지면 '전락'하는 것은 본인이라는 '추업부' 차별이 wRo]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2) '매춘'에 대한 오해
: 강제나 임의에 관계없이 '매준'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성과 금전의 교환'이 아니다. 성 산업으로서
"매매춘'은 파는 사람(업자나 경영자, 대개 남성)과 사는 사람(인 남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환 행위
이며, 거기서 여성은 교환주체=당사자38601가 아니라 단지 객체=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3) '매춘하는' 여성의 오욕화
: '매춘' 패러다임은 패러다임 자체 속에 여성의 '주체성'을 함의함으로써 본인의 '의사'를 문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춘부'와 그 밖의 여성 사이를
나누는 '성의 이중 기준'을 떠받친다는 점에서 가부장제 BES 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매춘' 패러다
임의 차별성은 많은 일본인 일본군 '위안부'로부터 목소리를 빼앗아 왔다.
(2) ‘He’ 패러다임의 기만성
1) ‘Aes’ 제도에 확실히 Fo] 관여했다는 점.(군 직영
관리 하에 놓여 있었다.
2) '매춘'이라는 겉보기와는 달리 그 실태는 감시하의 ‘Ba 노동'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용 시 병사들
은 군표를 ASHES 되어 있었는데 군표를 받는 사람은 업자였으며, 병사와 '위안부' 사이에 직접적인
'교환' 관계는 없었다. 또한 감금과 강제로 이루어졌다.
3) '위안부'를 '조달'하는데 '자유의사'는커녕 폭력에 의한 강제나 납치, 취업 사기나 인신매매와 같은 유
형:무형의 압력이 동원되었다는 점.
(3) 뒤늦게 알려지고, 운동하게 된 원인
1) 일본: 군대 '위안소'에 군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필요악'이라고 인정은 되
었지만 '황군의 치부'로서 인식되고 있었다. |
2) 한국: '위안부' 문제가 특별한 '전쟁 범죄'로 취급될 수 있다는 WAS 일본도 한국도 없었다. 특히
도쿄 재판(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한국이 FAS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고발 측에 서지 못했
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본에서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면 왜 한국 정부가 지금까지 입 다물고 있었는
가'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사태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O 가부장제 패러다임
: '민족의 치욕'이라는 가부장제 패러다임인데 이것은 여성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인
a 침해를 가부장제하에서 남성 간에 벌어지는 재산권 싸움으로 환원한다. 때문에 일종의 적의 남성들
에 의한 재산 침탈과 같은 수치이라는 생각, 민족의 ASAE 이유로 위안부에서 행해졌던 만행 사실
에 대한 발언을 억압시켰다. 그러나 성적 피해의 자기 인지는 섹슈얼리티의 자기 결정자로서 여성 자신
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개인 청구권을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해 국가가 개인의 이해를 대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 국가를 초월하는 성질을 갖는다.
ae
안소, TAS 위안소, 군 이용 Ata). 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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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순결 이데올로기 패러다임
: 또 한 가지는 '순결' 이데올로기에 관한 것이다. 순결성과 정결성을 강조하여 명백히 '범죄'에 의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더럽혀진 여자, 불쌍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3. 이중의 범죄
: 위에서와 같이 여러가지 패러다임이 작용하여 이중의 범죄가 저질러졌는데 '강간' 그 자체의 범죄,
그리고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반세기 동안 일상적으로 계속되어 온 범죄가
그것이다. | oe
이러한 기존의 패러다임에 반하여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성노예'라는 단어이다. 이것의 중요 개념은 ‘al
성의 인권'과 ‘AA 자기 결정권'이다. 그러나 역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인권'이라는 것은 유엔에서
결정한 것인데 냉전 이후의 미국 일극 집중체제 아래에서의 유엔 역할을 단순하게 평가할 수모 만은 없다.
외교 시 ‘MAS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자국의 전쟁 범죄나 무력 침략에는 눈을 감아 왔기에, 유엔은
“정의'의 대명사가 될 수 없다. 또한 ‘AA 자기 결정권' 개념은 성 노동을 둘러싼 논의를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임의성'의 유무 문제로 호도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 윤희순 )
윤회순(1860~1935) : 여성 의병 노래지어 항일투쟁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왜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쏘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시정 받들소냐.
우리 의병 도와 주세.
우리 나라 성공하면 우리 나리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 '안사람 의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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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독립하려는 운동은 크게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 의병
투쟁과 애국 계몽운동이었다. 의병투쟁은 주로 지방 유생과 SIS SACLE 추진 전개되었다. 구국교육
운동, 국채보상운동, 애국계몽운동 SI 민족운동에는 FY 참여가 활발하였으나, 의병 mn 죽음을
무릅쓰는 무력 투쟁이므로 여성의 참여는 불가한 것으로 믿었다. 게다가 의병의 지도자는 완고한 유생
들이 주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데서 여성의 참여는 더욱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기 같은 그
롯된 선입견으로 역사를 보고 해석한 우리에게 윤희순의 항일구국적 생애는 여성의 역사적 위상을 새롭
Al 인식하게 한다. 윤희순은 나라가 기우는 비상시국에 Aste 여성들이 전통적인 안사람일만을 고수할
FE 없다고 생각했다. ABS 일으킨 시아버지를 따라 때로는 남장 AG] 되기도 하고, 또 "왜놈 잡는
데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고 안방 여인들에게 의병 참여를 독려하는 의병가를 지어 부르게하는
등 눈부신 SHS 하였던 여중군자(※무접구)이다.
윤 wu
au 효순하고 언행이 엄절하여 어른스러움이 있었다. 16세때인 제 Led 고종 13년(서기1878년) 유제
원과 결혼하였는데 그의 시아버지는 외당 유홍석이다. 외당은 을미의병(1895) 당시 HS HSA 등
춘천 유림과 더불어 ASS 의병대장으로 추대, 일본에 Poe 춘천부 관철사 조인승을 사형에 처하
는 등, 의병
작전을 전개한 인물이다. 성품이 활발하고 씩씩하여 시부모를 봉양하고 가사를 처리하는데
자연스럽게 척사위정의 척양척왜를 실천하고 의병 운동에 참여하는 분위기에 젖게 되었
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선비가정의 며느리에서 여성의병 활동가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던 역사의 참
고종 32년(서기 1895년) 을미년 왜적에 의해 명성황후(민비) 시해사건이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단
발령이 내려진다. 전국에서는 의병봉기가 일제히 있었고, ASS] BIS Bose 소동이 벌어졌다. 윤
희순의 활약은 의병봉기에서 빛난다. 춘천의병은 관찰사 조인승을 처형하고 한양으로 진군하는 의병행
렬이 가평까지 BA] 된다. 그러나 춘천의병은 벌업산 전투에서 경군과 왜경에 패한다. 이때 시아버지 외
당이 이끄는 의병부대도 참전한다. 윤희순은 여성도 남성과 같이 구국 전선에 나서고, 또 남정네를 도와
의병의 승전을 도모하고자 선두에 선다.
윤 00 els BAS, 그리고 : 만주에서도 독립운동하는 남정네를 적극적
우리나라 의병들은 애국으로 뭉쳤으니
고혼이 AS 무엇이 서러우라
의로이 죽은 것은 대장부의 도리거늘
SFOS 뭉쳤으니 죽음으로 충신되자
「병정노래」일부
이런 「병정노래」 를 지어 부르고, 또 여성들에게 부르게 하면서 여성의병으로서의 활동을 실천하고 장
려했다.
윤희순은 의병가를 지었다. 「병정가」「의병노래」「안사람 Apa, CGF 노래」등 8편이 지
금까지 전한다. 이들 여성 의병가들은 을미년 의병봉기가 있었던 WS 전후해서 창작되었다. 윤희순의
의병가는 최초의 한글 의병가이고 여성 의병가이다. 또한 LISS 타처의 의병들이 마을에 당도하면
식사 준비를 손수하여 주고, 마을 부인들을 모아놓고 여성들도 의병으로 나서고 또 의병을 돕는데 나서
라고 독려하였다. 남녀의 분별이 각별하던 시대, 그녀는 "구국의 의리에 남녀의 구별이 어디에 있는가."
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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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의식이 투철하여 구국 참여에 대한 철저한 남녀 평등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 여자를 따지지
고 애국전선에 나서자고 노래한다.
특히 의병장으로 나서는 남성을 여성들은 의병들의 뒷바라지를 하자고 장려한다. 여성의 의병참여의
계는 의병항전에 앞장서는데 까지 도달하지 못한데 있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보아 그 만큼 구국전
에 나섰던 것만으로도 여성의 사회참여를 실현시키고 있다.
라서 의병을 돕고 나라를 찾는데 발 벗고 나서자고 한 것은 그 자체가 구국운동 독렵운동이였다. 그
여성참여 여성해방의 원초적인 ASS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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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
여자 의병 모집
1906년 을사조약이 강제 Ada 두 USA, 최익현 둥이 이끄는 의병들이 각지에서 일어나게 되고
1907년 해이그 밀사사건을 구실로 일제가 고종황제를 폐위시키고 이어 한국군을 해산시켰다. 그러자 해
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여 격렬한 의병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매 윤회순도 여자의병 30여명을
모집하여 의병의 취사, 세탁을 맡아 하고 동리 남녀 노유를 모아 쇠똥과 찰흙 SS 섞어서 화승총에 쓸
aoe 만들고, 의병투쟁장에 직접 참여, 활약하였다. 의당은 주길리(#솜토)전두에서 부상한 후 치료를
받고 다시 의병을 조직하고자 WA 의병과 청년들을 새로 모으는 중 1910년의 국치(6086)의 민족 비극
을 당하게 되었다. 이에 외당은 왜적의 통치를 받을 수 없다면서 그녀의 남편과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윤희순도 떠나려 하였는데, 왜경이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쳐 어린 아들을 매질하면서 시아버지와 남편의
행방을 캐어 물었다. 그때 윤희순은 당당한 태도로, "자식을 죽이고 내가 죽을지언정, 큰일하시는 시아
버님을 죽게 알려줄 줄 아느냐? 만번 죽어도 말못하겠다."고 하였다. 왜경도 그의 의기에 눌리고 감화되
어 그대로 돌아갔다. 이것으로 보아도 FHL 위한 그녀의 용기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RIEL 시아
버
또
희
의
을
지의 뒤를 따라 중국으로 갔다. 그러나 외당은 1913년에 사망하였고 1916년에는 ASE 사망하고,
은 해 10월 8일에도 남편이 왜경에게 잡혀 심한 고초 끝에 순사하는 비운을 당하였다. 그러나 윤
구국 의지와 활동은 Aolr] 않았다. 시아버지와 남편의 장례를 손수 지내고, 2 곧 '의병군가', '부인
}' 등을 지어 동분서주하면서 동지를 모아 병영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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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투쟁 전하고자 '일생록' 저술
그녀의 눈부신 활약은 독립군에게 큰 용기를 주었으며, 왜병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왜경
의 fF (RE)S 받아 체포된 큰아들(8)이 MYO] 고문으로 1935년 7월 19일 사망하고 말았다. 3대
에 걸친 의병활동을 뒷받침하고 또 스스로 참여했던 그녀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선대의 이 의로운 애국정신을 자자손손에게 가르쳐야 PS 절실히 깨닫고 자신의 「일생록」을 저술하
였다. 그리고 그 말미에, "매사는 자신이 알아서, 흐르는 시대를 따라 SS 도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살아가길 바란다. 충효 정신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느니라." 고 하는 충효의 교훈을 남기었다.
1935년 8월 1일, 75세를 일기로 현난하며 위대한 일생을 마치었다. 그녀는 봉천성 해성현 묘관둔 북
산에 묻히었다가 aso] 되돌아와 국군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녀의 충성된 의기를 기려 1977년에 건국
훈장 대통령상에, 다시 1990년에 얘국장에 추서되었다.
희순은 여성의 시대적 사명 민족적 사명을 일깨우면서 여성의 자아발전을 고취한다. 윤희순의 노래와
의 끝에는 「조선 안사람이 대표로 경고한다」 「왜적놈에게 경고한다」등의 끝말을 기록하고 있는데
것은 AVS 대표해서 조선 안사람이 대표가 되어 경고한다고 AAA 알리고 있다. 여성이 이 나라
의 주인으로서 주장하고 경고하는 것이다.
『오랑캐들아 경고한다. 오랑캐 원수놈들아. 남의나라 침범하여 무엇을 바라면서 의기양양한단 말이냐. 짐
승같은 왜놈 원수들아. 남의 나라 침범 말고 네 나라나 보살펴 가지 않고 남의 나라 침범하여 너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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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될소냐. 언제라도 너의 나라 망할 것이니 후회할 날이 을 것이다. 너의 인종 죽여가며 남의 나라 침범
하여 너의 나라 먼저 망할 것이다. 후회 말고 가거라. 우리나라 역사 있어 너의 나라 망해가것마는 무슨
일로 심심하면 괴롭히며 Vd 말이냐.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대로 너의 나라 원수 삼아갈 것이다. 좋은 말
로 Ga 적에 너의 나라로 가서 너의 부모에게 가족 데리고 살아가며 너 나라를 잘 보살펴 살도록 하여
라. 조선 안사람이 대표로 경고한다. 조선 선비의 아내 윤회순』
구한말 의병봉기에 앞장섰던 여성의병 윤희순의사의 일본 침략자들에 대한 경고문의 하나이다.
(현대문으로 고침)
윤희순의 여성의병 참여와 여성의병가 제작은 오늘날 말하는 여성 사회참여의 선구자적 행동이다. 그
것은 개인의 이익과 행복보다 국가와 사회의 구제에 있었다. 아니 멸망한 나라와 겨레의 생명을 보존하
고 독렵을 찾자는데 쏟아진 정열이었다. 오늘날의 여성의 사회참여에 선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
문이다. 윤희순의 의병항일전을 여성의 사회참여의 선구자적 행동주의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에 있다. |
토론과제:
의병 윤회순의 활동의 의의와 아쉬운 점, 드는 BAS 얘기해보면서 여성이 사회에 참여 하는데 있어서
나서는 문제와 극복방안을 얘기해보자. 그리고 여성의 진정한 사회참여가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자.
( 허난설헌 》
허난설헌은 그동안 황진이와 더불어 대표적인 여성 시인으로 유명했었다. 그러나 단순한 여류 시인으
로서가 아니라 신사임당으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이상적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뛰어난 ASS 글로
표현하고 인정받으려 노력했으나 시대의 봉건적 한계로 인해 희생당한 인물로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
하고 있다. 더구나 400년 전에 이미 세계적인 시인으로서 이름을 널리 알린 허난설헌은 시대의 한계에
도전한 페미니스트로서 그 삶을 알아가는 것자체가 ASS 묻혀진 여성의 FAS 새로 발굴하는 의의
를 가질 것이다.
1. 허닌설천의 At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시인의 한 사람인 PIAAHMHMS 1563년 강원도 강릉(16)에서태어
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30여 년 동안 요직에 있었으며,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한 바 있는 허엽(0@8)이
다. 그의 장남은 AG, 차남은 봉, 그녀는 그 바로 Volz, 셋째 아들 HE 그녀의 아우였다. 그녀
의 이름은 초희(※08)라 했는데, 수재로 소문난 오빠들과 동생 사이에서 자라다가, 언제부턴가 오빠들과
동생과 함께 한학(\뿌) 공부를 시작하였다. 남녀 차별이 심한 봉건제에서는 대체로 여자에게는 공부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므로, 아무도 초희에게 글을 가르쳐 주려고 하지 Fc. 하지만 그녀는 오
빠들 어깨 너머로 한자를 배워서 한번 익힌 것은 결코 잊지 않았고 어려운 한학 AAS 거침없이 읽어
냈다. 이에 놀란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게도 똑같이 한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많
은 시를 지였지만, 소녀 AAS 어떻게 보냈는지는 확실하지 Sd. 다만 그녀는 당시 최고의 Balle
HAM 한 사람이었고 오빠 허봉의 스승이었던 이달(추졸:1561~1618)에게 ALAS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열 일곱 살에 명문 양반 가문에 시집을 갔다. 그녀의 남편 AV emMe 나중에 과거에 합
격하여 중앙 관청에 근무하였는데, 별로 유능하지 않았는지 그리 높은 지위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그래
서 못사람들이 무슨 일에서나 남편을 부인의 재능과 비교하자 남편은 그녀을 매우 못살게 굴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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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또한 미루 i” 짐작할 수 있듯이, 시어머니도 며느리를 가혹하게 구박하였던 듯하다. 또한 두 어린 자
AS 병으로 잃으면서 허난설헌은 더욱외로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URE 그녀는 불행한 결혼 YRS
강요당했던 친정의 고상하고 지성 적인 분위기와 따스하게 감싸주던 친정 식구들을 더욱 그리워하
Al 되었다. 그러나 ays] AGS aS 불행을 겪게 되었다. 수재인 그녀의 오빠들은 과거에 합격하여
각자 요직에 올랐지만, 정적들의 AMS 받아 자주 궁지에 몰렸다. 특히 둘째 오빠인 봉은 멀리 북방 국
경 지대인 FAAS 유배된 적이 있었다. 여인으로 살아가면서 바늘방석 같은 시집살이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하였던 듯하다. 그러나 자신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하
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외로운 삶을 살던 그녀는 27세라는 젊은 ola] 안타깝게 AAAS
로 간다.
2. 허난설천의 작품;
그녀는 고되고 쓸쓸한 생활을 수없이 썼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고독 독만을 한탄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
녀는 세상 여인들의 여러 가지의 VES 동정하고, 특히 가난한 PIA 태어난다는 이유로 학대받고 F
주림에 울어야 하는 사람들의 비애와 분노를 자신의 고통으로서 노래하고 있다. 외로운 과부를 시잡보
내는 내용, 외로운 궁녀를 구원하는 내용,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평생 베틀을 짜야하는
가난한 여성의 삶 등 그녀가 지은 시에는 휴머니즘이 담겨 있다. |
AYE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SAIS 노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ata 신분 차별에 대해서
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국가의 SVS 염려하는 백성의 목소리에 AS 기울이고, =
토 방위를 위한 공사에 동원된 서민들의 애국심을 노래하였다. 00
0
이와 같이 TYE 넓은 안목으로 인생을 생각하고 Aas 생각하고 조국의 운명을 염려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후세의 뛰어난 학자와 문학자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의 뛰어난 여성 시인 가운데 가장 탁월한
사람은 허난설현이다"라고 칭송하고 있
그녀는 생각하고 느끼고 모든 것을 마치 일과처럼 시로 쓰려고 하였다. 그렇게 쓴
장롱으로 가득 RGD 한다. 그러나 주부로서 항상 고독하였던 그녀는 1589년 겨우
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f 거두기에 앞서 그녀는 생명을 불태우듯이 써 왔던 시고를 전부 태워 버
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 유언대로 그녀가 죽자 그 주옥같은 ASE 모두 불태워졌다. FENG
사람들이 한 일이지만, 통탄스럽기 Fo] 없는 일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그녀가 age YAS 시고가
그녀의 동생인 허균에 의해서 소중하게 BAST 있었다. 천부적 ASS 살리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은 ㆍ
그녀였지만, 그녀가 MAS 뜨고 열 일곱 해가 지난 1606년, 그녀는 우연히 일약 국제적인 존재가 되었
다. 이는 허난설헌을 당당한 시인으로서 높이 평가하고 SS 알리기 위해 노력한 동생 허균의 공이었
다.
시 foe 커다란
au
스물 ae 살의 젊
때마침 그해 조선에 은 명나라 사신 FAR CRS #5, 부사 SHARAF) AAS 좋아하여 허균과 .
친교를 맺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사람 은 허근이 보여준 죽은 그녀의 유고를 보고 그 훌륭한 시에 경탄
하였다. 주지번은 허균에게 부탁하여 허균이 준 준 허난설헌의 ADS 명나라에 가져가 조선의 여류 시인
「허난설헌집」을 발간하였다. 그 시집은 명나라 도처에서 크게 환영받아 각지에서 시집의 주문이 쇄도
하여 문자 그래도 낙양의 종이 AS SAGE 평판을 얻었다.
그 중에서도 명나라의 유명한 문인 조문기(0※즈)는 그녀가 일곱 살 때 썼다고 알려진 「광한전 백옥
루 ASE FRRAESB LBRO, S 읽고 절찬하였다. " 이 BIS 읽으니 흡사 신선이 되어 백옥루에
올라 있는 HA] 들었다." 명나라에서 그녀의 시집이 대단한 평판을 받자 곧 조선에 역수입되었지만,
허균이 1618년 반역죄로 처형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그녀의 시집도 그대로 매장되고 말았다. ㆍ
그리고 1692년이 되어서야 다시 조선에서 그녀의 시집이 출판되었다. 그것은 명나라에서 출판된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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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것이었다. 그리고 1711년 분다이야 지로베에등에 의하여 간행되어 일본에서도 널리 애독되었다.
이후 여성이 이름을 알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허난설헌의 Aca 대한 견제로 인한 표절시비가 ㆍ있었
지만 이렇게 국제적인 각광을 받은 그녀의 시는 16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문학사에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3. 작품을 통해서 본 허난설헌의 휴머니즘적 퍼미나즘
조선시대에 여성은 이름이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친정에서 자랄 때에는 이름이
있었다. 신분에 따라서 우리말로, oA. 한자어로 이름을 지어서 불렀건만, 시집간 뒤에는 저절로 없
어진 것이다. 친정의 족보에는 딸 대신 사위의 이름이 들어가고, A489 족보에는 며느리의 이름 대신
김씨나 이씨 등의 성시만 실렸다. 자기를 표현하는 글이 없으니까 구태어 이름이 전해질 계기도 없었다.
이런 Alo] 살면서 Sato] 누이의 OSS 자세하게 소개한 것은 그만큼 여성의 SAS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난설헌의 SS 초희이고, 자는 경번이다. 초당의 A 달이고, 서당 김성립의 아내이다.-<학산초담>
보통 여성 작가의 경우 그 사람의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aS 통해 평가받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이름으로 작품 PES 한 것은 그녀가 AGS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한 자
아존중감을 엿볼 수 있다.
허난설헌의 작품으로 후세에 남겨진 것은 시160여수와 함께 산문으로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 있
다. (SUA RRB AY 7} 살고 있다는 상상 속의 달세계의 궁전), 백옥루(러조뿔:상상 속의 천제(ㅅㅅ)
가 사는 궁전)의 PSECERX) 천상세계에 백옥루라는 누각을 지으면서 그 누각의 의의를 밝히는 글
이다. 일곱 살에 천재 소녀로서 이 글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새로운 의견으로 생애 가장 나중에 지
은 글이 아닌가하는 설이 있다. 이 글은 이상세계에 대한 추구와 이를 향해 날아가고 싶은 작가의 욕망
이 강하게 배어있으며, 웅장한 스케일로 광활한 한 폭의 선계를 그린 철학적 깊이를 갖고 있은 글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여인의 소망, 당당한 사회인으로, 시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끊어버릴 수 없는 욕망, 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좌절과 고통, 이로부터의 탈출 시도, 새로운 AA 대한
추구와 도전, 이 모든 것은 허난설헌 혼자 힘만으로는 결코 남을 수 없었던 조선의 울타리였다. 그리하
여 닫힌 현실에 절망한 그녀는 현실세계를 넘어 새로운 이상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허난설헌이 하늘위
에 지어올린 광한전복옥루는 인간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와 이상을 향해 날아간 시인 허난서헌의
왕궁이다. 허난설헌은 아무런 구속과 차별이 없는 세상, 난설헌의 능력과 시를 인정해주는 곳, 자유로움
과 사랑의 안식이 있는 세상을 Fol 자선이 지어놓은 백옥루 SAS 향애 날아갔다.
4. 시대의 한계를 넘어
HAMAS 여성이라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억눌려 살아야만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괴로워하면서도
다시 작품으로 이를 초월했다. 그러나 세상의 Ado 불행한 삶을 살다 요절한 젊은 여성시인으로서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0
“나는 세상에. 태어나 세가지를 후회한다. 첫 번째는 김성립의 아내로 태어난 것이요, 두 번째는 조선망
에 태어난 것이고, 세 번째는 조선땅에 여자로 태어난 것이다”
《 신사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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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제 : |
“다음은 인물을 알아 맞추는 문제입니다. 현모양처 - 삐익, 신사임당."
이처럼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현모양처로 규정지으면서 신사임당을 집안의 어
질교 현명한 아내/어머니로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으론 현모양처이면서 자기계발을 꾸준히 한 sage
여성으로 부각시키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슈퍼우면의 여성이 되기를 강요한다. 신사임당의 ,주체적인 삶 . ,
을 잘 알아보자. ; Fe 4 x eA
그리고 AF 사회는 우리에게 어떤 여성의 모습을 강요하고 있는지도 생각하여 보자. RES <.
위의 토론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여성상은 무엇이어야 하나? WAT TIS 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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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500년(166 L 5) aay tab ses THK 08 013 ene alg) , BDU 서08307 oF 6S rane
ity iy | 누우 Facb 1260/거거등예고 ear,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법원읍 동문리에 묘가 있다.
사임당은 당호이며, 그밖에 APR PUE 불렸다. 본관은 Ri, 아버지는 HM, 어머니는 용인 추
때 HBS] 딸이다. 7, obbnbei ADH 579
외가인 강릉 AHA 태어나 성장하였다. 13세 되던 해인 1516년(중종 11) 아버지가 진사가 되었으
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 HME 기묘명현의 한 사람이었으나 1519년 기묘사화 당시 참화를
당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 MWS 사임당의 어머니를 아들잡이로 여겨 출가 후에도 친정에 살도록 했
기 때문에 사임당도 외가에 살면서 어머니로부터 여자로서의 범절과 학문을 배워 부덕과 교양을 겸비해
나갈 수 있었다. -
19세에 Mk 추뜨인 TBH 결혼하였다. 자신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들 없는 친정의 아들잡이였으므
로 남편의 동의를 얻어 친정에서 생활하였다. 결혼 몇 달 후 아버지가 죽자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후 시가의 선조 때부터의 터전인 파주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였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리에서도 여러 해 살았다. 때때로 Aged 강릉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의 말동무를 해드렸
으며, 이런 와중에 셋째 아들인 SHS 강릉에서 낳았다. 38세 되던 해 시집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올라와 BEB(A 청진동)에서 살다가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다. 같은 해 여름, 남편이 수
운관관에 임명되어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에 갔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사후 사임당이 조선조를 대표하는 여인으로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은 사임당이라는 당호에서 잘 알 수 있
다. 이 GSE 중국 고대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ALS 본받는다는 것으로서 당시 태임을 최고의 a
성상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Yao] 보여준 온아한 성품과 예술적 자질조차도 모두 태임
의 덕을 배우고 BE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후 이이와 같은 대학자를 길러낸 Ese 어머니
로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예술가로서, 그리고 아내의 AVS 생활 속에서 성숙시켜 나갔던 것이다.
뛰어난 예술가로서의 ase 일찍부터 나타나 ?세에 KK] 그림을 스스로 사숙하였던것에서 잘 드러난
다. 또한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 예술가로서의 대성할 특성을 보였는데,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감회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든가 강릉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많은 밤을 Seow 지새우기도 하였다.
AYP] 예술가로서의 면모는 다방면에 걸쳐 있다. 먼저 그림부문에서 주된 ade 삼은 것은 풀벌레-
포도 TERA ETE Wk 등이었다. 이런 MBS 통해 나타난 그림은 마치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였다. 예를 들어, SAIS 그린 그림을 마당에서 여름별에 말리려 하자 Fo] 다가와 산 풀벌레인
줄 알고 쪼아 먹으려 하다가 종이가 Gola 뻔하기도 했다고 한다. 후세의 시인:학자들이 사임당의 그림
에 발문을 붙여 침이 마르도록 절찬하였다. 채색화ㆍ묵화 등 약 40폭 정도가 전해지는데 아직 세상에 공
개되지 않은 그림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그림에 대해 명종 때 사람인 808\은 『패
관잡기』 에서 "사임당의 BEM 산수는 절묘하여 평하는 이들이 '안견의 다음에 간다'라고 한다. 어찌
부녀자의 그림이라 하여 경홀히 여길 것이며, 또 어찌 부녀자에게 합당한 Yo] 아니라고 나무랄 수 있
2% 것이래."라고 극찬할-점도였다. 작품으로는 UMMM, KM, . A, . RE, | '초
]
--- page 26 ---
Sm, . 「총뿌6\0」 Sol 있다.
글씨로는 초서 여섯 폭과 해서 한 폭이 전한다. 이에 대해 NSB of "초서에 뛰어나 MEME 같
이 융곰스럽고, 그 변화가 구름 같으며 SH7 Ss. "고 평하였다. 여기서 그 고상한 정신과 기백
을 엿볼 수 있다. 죽은 지 300년이 넘게 지난 1868년, 강릉부사 FRE 사임당의 SAS 영원히 후
Ao] 전하고자 그 SHS 판각하여 오죽헌에 보관하면서 그 글씨를 평한 발문에서 "정성들여 그은 획이
그옥하면서도 고상하고 정결함과 동시에 고요하여 더욱더 저 ads 덕을 BE 것임을 알 수 있다. "고
Aaa 마지 않았다. 그 B= 'RHER, 즉 말 발굽과 누에 머리라는 ao 의한 본격적인 글씨로
평가받는다. :
시 분야에서는 몇몇 작품만이 전해지고 그 내용은 주로 친정 어머니에 대한 애듯한 그리움이 담겨져
다. 서울 ABAOZ 향하면서 지은 MAMMSRE, 4G 서울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ge 「
Bis 둥이 그것이었다. 이는 어머니의 세계가 자신의 예술 방면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보
요 CH 32
Be 교양과 학문을 갖춘 예술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과 함께 그 A
으
능을 발휘할 수 있는 집안 환경에 있었다. 하나는 현명한 어머니의 가르침을 가까이서 받을 수 있었다
는 점과 다른 하나는 대부분의 다른 남성들이 완폭하고 자기주장적인 유교사회에서 아내의 자질을 인정
해 주고 부인의 말에 AS 기울이는 도량 넓은 남편을 만났다는 점이다. 자신의 aso] 주변의 따뜻한
인간애를 통해 발현할 수 있었음인지 받은 후의는 자식사랑으로 이어졌다. 자녀들 가운데 그의 훈화와
감화를 제일 많이 받은 이는 셋째 아들 HAG. EH 이이는 어머니 사임당의 행장기를 저술하였는데,
여기에서 어머니의 예술적 재능ㆍ우아한 천품-정결한 지조-훼추한 성품 SS 소상히 밝혔다. 또한 아들
Ao} 큰딸 BAS 자신의 재주를 계승한 예술가로 키웠다. 또한 남편을 제대로 보필했던 일화로 AS
= 가 우의정으로 있을 때 남편이 그 문하에 들어 간적이 있었다. 당시 시당숙을 못마망히 여겼던 차
에 남편이 그와 가까이 지내자, 남편에게 "어진 선비를 모해하고 권세만을 탐하는 당숙의 영광이 오래
갈 수 없다. "고 하면서 그 문하에서 나올 것을 권하였다. 남편 원수는 아내의 조언을 받아들인 덕에
1545년(인종 1) 이기와 Fro] 결탁하여 일으킨 을사사화로 많은 선비들이 화를 당했을 때 이에 a
루되지 않고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
위와 같은 면모를 종합해 보았을 때, 사임당은 조선왕조가 요구하는 유교적 여성상에 굴하지 않고 독립
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스스로 개척해 간 여인이라 할 수 있다
2. 짧게 알아보는 신사임당의 생애
1) 출생과 성장 과정
조선 연산군 10년 강원도 북평(현재의 오죽헌) 마을에서 태어남
성은 신씨이고, 이름은 <
- 어린 사임당의 교육
외할아버지의 남다른 생각 : "여자도 배워야 한다."
어린 사임당은 학문에 대한 열의가 높았음
- 사임당의 BAA
믿음직스러운 아들처럼 효성심이 깊음
어머니인 열녀 이씨의 효성심을 물려 받
출가 후에도 아버지 3년상을 친정에서 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으로 늘 시
- 사임당의 호
사임당의 뜻 : 태임을 본받는다는
rife aia 미0
al:
4,
미
-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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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능과 업적
- 어릴 때부터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남 |
- 7세때 화가 안견의 BES 이어받아 산수, 포도, 곤충, 풀벌레 FO]
정묘한 솜씨를보여 많은 작
x=
a
- 문장, REA, 바느질, 자수 등 모든 방면에 뛰어난 SAS 보임
3) 사임당의 자녀 교육
- 사람다운 사람이 되려
된다고 강조함
- 옛날 위인들의 행실을 들려 주고 본받게 함
몸소 실천하여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임
동방의 YUBA 율곡 선생을 기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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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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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 훌륭한 아내로서의 사임당
- 항상 부족한 남편을 격려하고 학문에 전념하도록 이끌어 줌
부군의 약한 의지와 부족한 끈기를 메워 주려고 노력함
학문에 전념하도록 부군을 멀리 절로 보내 공부를 시킴
- 남편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선도함
5) 평가와 교훈
- 훌륭한 예술가, 아내, 어머니로서의 평가
. - He 사대의 풍조를 넘어서는 강한 의지와 인내
조선 시대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한계 속에서 신사임당이 해냈던 업적
3. 신사임당의 예술적 재능과 환경
1) 자질과 재능
사임당이 지향한 최고의 여성상은 태임으로 그녀를 본받는다는 RLS GSS AREA, 사임당을 평한
사람들 중에는 그의 온아한 천품과 예술적 자질조차도 모두 배우고 BE 데서 이루어진 것
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이이와 같은 대정치가요 대학자를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평가한
때문이다.
그러나 사임당은 완전한 예술인으로서의 생활 속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성숙시켰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는 조선왕조가 요구하는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
활을 스스로 HAM 여성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교양과 학문을 갖춘 예술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배
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그 Ass 발휘할 수 있도록 HEE 좋은 환경이 있었다. 그의 Al
은 7세에 안견 (RE) UBS 스스로 사숙(#※.8)하였던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 그녀는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녀 예술가로서 대성할 특성을 지니고 있었
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감회가 일어나 눈물을 지었다든지 또는 강릉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
Se 그녀의 섬세한 감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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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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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림 재능 -
그녀의 그림:글씨-시는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그림은 풀벌레ㆍ포도:화조ㆍ어죽(@.)-매화-난초-산수
등이 주된 SAMI. 마치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여서 풀벌레 AVS 마당에 내놓아 여름
별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산 풀벌레인 줄 알고 쪼아 종이가 Bla 뻔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 그녀의 그림에 후세의 시인:학자들이 발문을 붙였는데 한결같이 절찬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림
HARES 등 약 40폭 AEH 전해지고 있는데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Ve SS 수십 점 있는
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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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로는 초서 여섯 폭과 해서 한 폭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BW 조각의 글씨에서 그녀의 고상한 정신
과 기백을 B+ 있다. -
1868년(고종 5) 강릉부사로 간 LSAUFEME 사임당의 글씨를 영원히 후세에 남기고자 그 글씨를
관각하여 오죽헌에 보관하면서 발문을 적었는데, 그는 거기서 사임당의 글씨를 “정성들여 그은 획이 그
Sau 고상하고 정결하고 고요하여 부인께서 더욱더 저 태임의 덕을 VE 것임을 알 수 있다.”고 격찬
하였다.
그녀의 글씨는 그야말로 말발굽과 누에 머리 (SBWBM) 라는 체법에 의한 본격적인 글씨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절묘한 예술적 aso] 관하여 명종 때의 사람 SA MAS 《패관잡기》에서 “사임
당의 포도와 산수는 절묘하여 평하는 이들이 '안견의 다음에 간다.'라고 한다. 어찌 부녀자의 그림이라
하여 경홀히 여길 것이며, = 어찌 부녀자에게 합당한 Ao] 아니라고 나무랄 수 있을 것이래."라고 격찬
하였다.
그녀의 여섯 폭짜리 초서가 오늘까지 전해진 경과를 보면, 사임당의 넷째 여동생의 아들 Baz)
이 이 여섯폭 초서를 얻어간 것을 그 딸이 최대해(뿔ㅅ%)에게 출가할 때 가지고 가 최씨가문에서 대대
로 가보로 전하였다.
그런데 영조 때에 이웃 고을 사람의 Bo} 빠져 이를 빼앗겼다가 어렵게 되찾아 그 뒤 최씨집안에서 계
속 보관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강릉시 두산동 최씨가에 보관되어 있으며, 윤중의에 의하여 판각된 것만
이 오죽현에 보관되어 있다.
4) 예술적 환경 ae :
사임당으로 하여금 절묘한 경지의 예술세계에 머물게 한 중요한 동기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환경이라
고 할 수 있다. RAS AIS 어머니의 훈조를 마음껏 받을 수 있는 BIS 가졌다는 점을 들 수 있고
둘째는 완폭하고 자기주장적인 유교사회의 전형적인 남성 우위의 허세를 부리는 그러한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
그녀의 남편은 자질을 인정해주고 아내의 gol AS 기울이는 도량 넓은 사나이였다는 점이다. 먼저 그
의ㆍ혼인 '전 환경을 보면 그의 예술과 학문에 깊은 영향을 = 외조부의 학문은 현철한 어머니를 통해서
사임당에게 전수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무남독녀로 부모의 깊은 사랑을 받으면서
정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반 여성들이 겪는 시가에서의 정신적 고통이나 Say 분주함이
서, 비교적 자유롭게 소신껏 일상생활과 자녀교육을 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어머니에게 훈도를 받은 명석한 그녀는 천부적 ASS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그녀가 서울
시가로 가면서 지은 《유대관령망친정 AMMAR 이나 서울에서 어머니
친 BR) 등의 시에서 어머니를 향한 그녀의 야정이 얼마나 깊고 절절한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어머
니의 세계가 사임당에게 그만큼 영향이 AHS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교적 규범은 여자가 출가한 뒤는 오직 시집만을 위하도록 요구하였는데도 그것을 알면서 친정을 그리
께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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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위하고 친정에서 자주 생활한 AL 규격화된 의리의 규범보다는 순수한 인간본연의 정과 사랑을 더 ㆍ
요시한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예술 속에서 바로 나타나듯이 거짓 없는 BAYS 가장 정직하면서 순수
하게 Frade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예술성을 보다 ses 것은 남편
수 ane 것은 남편과 시어머니의 도량 때문이라 할 수 있
에게 자랑을 할 정도로 아내를 이해하고 또 재능을 인정하고
또 그는 아내와의 대화에도 인색하지 않아 대화에서 늘 배울
이다. 사임당의 시당숙 이기(추#기59)가 우의정으로 있을
1645년(인종 1)에 LAV F CHA 결탁하여 을사사화를 일으켜 선비들에게 크게 화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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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은 당숙이기는 하나 이와 같은 사람과 남편이 가까이 지내는 AS 참을 수가 없어, 남편에게 어
진 선비를 모해하고 권세만을 탐하는 당숙의 영광이 오래 갈 수 없음을 상기시키면서 그 aq we 들
여놓지 말라고 권하였다. 이원수는 이러한 아내의 말을 받아들여 뒷날 화를 당
하지 않았다.
- 29 -
--- page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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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원때는 /산영서이시직 의 수 VID TEV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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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4ttA ALI ot Tr <b Bolan A571 080 중남 OS 2)
> 쥬식여서 (Ye mH’ Leb) BOI MAA ¥ om LX, my
« 나혜석의 자유에 관한 여성학적 접근: 여지도 시람이다' 와 시람이 되는 길로서의 예술 ))
(Aael 곡며따이 WB alte 13 호 008 yey,
a 77 12 553 B28 (이화여때 여성학)
1936년 foley W's sy BUS - 지구 이 쓰이게 2 las
Soltis Rete < Lh 4, Klealars, 406 pee ern es Hr! al
’ 2 Wilh of
역사화되지 못한 신여성 나혜석
선각자적인 신여성이며 여성해방론자이고, 미술가이며 문인인 나혜석에 대한 연구는 한국사회에서 al
여성을 위치지우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져 왔다. 그래서 19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나
혜석은 비역사적이고 비정치적이며 부르조아적 개인주의 자유연애주창자에서, 여성해방론자로 그리고
식민지 조선 사회의 희생양인 빛나는 선각자로 그려져왔다. |
식민지 시대의 여성에 관한 연구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연구들은 적
여성교육의 등장과 근대 여성교육의 수혜자인 여성지식인 즉, 신여성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초기 연구
신여성들이 누구인가라는 인물사 기술에 SIS 두었었다. 그러다가 80년대 민족민주 해방 운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촉발되면서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사의 맥락에서 신여성들의 SES 평가하고 논하
연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때 신여성들의 삶은 실패한 삶으로 그리고 비역사적이고 비정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그들의 근대성은 친일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때 대표적인 신여성으로
었던 사람들이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등이다. 민족주의 역사서술 방식에서 역사적이란 정치적이고
적인 삶을 의미했다. 따라서 민족해방과 계급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신여성들의 a
적인 것이고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전통적인 남녀관계와 가족중심의 BAAN] 대한 저항 등
은 정치적인 것으로 인정되지 않았다.1) 나혜석을 비롯하여 많은 신여성들이 8.1운동으로 투 옥되었었고
조선여성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여성에 대한 Fee 과다하게 그들의 자유연
이와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어져왔다. 그러면서 그들의 역사적인 삶이나 경험은 탈역사화되고 탈정치화
되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개인적인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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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여성주의 담론이 확산되고
여성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들이 등장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여성들을 평가하고자 하는 연구
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식민화와 근대라는 변화된 상황은 일제 식민지 하에서도 조선인들에게 새로
1) 민족과 제국의 관계 SHAY 논의되어온 식민지하의 (신)여성연구는 거의 BH} 일정 정도 일제 억
압에 대한 저항 서사로서 접근되어왔다. 이러한 논의는 근대가 만들어내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인 ^
의 분화와 분화된 현실 속에서 SAIL 다양한 적응적인 | 혹은 다양한 주체 구성이라는 측면들을 무
시한다. 그리고 설령 다른 주체가 등장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위치지우고 설명하는 방식은 항상 결과론
적으로 그들의 의식적인 삶의 실천이 민족 해방의 정치학에 어떠한 기능을 하였는가하는 들 속에서 평
가되어왔다. 다시말해서 민족주의적인 논의들 속에서 여성들은 식민지와 결합되어서만 그들의 행위성이
설명되어왔다. 그 외의 어떤 해석도 그들의 행위성이나 주체성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따라
서 근대적 체험 혹은 근대적 문화와 접합되어지는 여성들에 대한 평가는 그들이 얼마나 조선인이였는가
성적인 정체성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것
혹은 열마나 친일이였는가하는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져왔고, =
은 2 일제와의 타협으로 간주되어왔다. 따라서 저항적인 조선
의미를 지닌 사람들의 삶의 체험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언어를
2) 90년대 중반이후 근대성에 대한 관심과 여성주의적인 관심이 결합되면서 식민지 시대의 선여성을 =
러싼 식민지 시대의 근대적, 민족주의적, 계급해방적 담론들이 어떻게 신여성들의 Aas 타자화시키고
3인 정체성이외의 새로운 문화적 정치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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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정체성을 구성하고 기존 사회관계에 저항하는 정치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을 제공했다. 예를
들면, 기독교, 여성교육 등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할 새로운 WAS 제공하면서 여성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성역할에 도전하고 자신의 미래를 기획하는 새로운 가능성 SS 제공했다. 그래서 여
성들에게도 생각할 수 있는 권리/자유,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자신의 SIS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의
식,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AAS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의지를 지닌 평등한 인간이라는 근
적 배옴은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구체적인 a 속에서 구현되기가 너무 어려웠고, 그 신념을 버리지 못하
는 여성들에게는 많은 희생을 치르게 했다. .
본 Ze 이제 신여성 나혜석이 희생자였거나 혹은 식민지 조선에서는 수용되기 어려운 너무 빨리 온
선각자였다는 설명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나혜석의 초기 여성의식을 여성주의적으로 역사
화하는 한 시도이다. 나혜석이 식민지 시대에 교류했던 남성 지식인들의 se 한국의 교육제도 속에서
후학들에게 위허지고 또 기억되어지면서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되어왔다. 그러나 나혜석의 쓴 글은 한
의 공식교육제도 내에서 읽혀진 적이 없고, 한국 여성들의 AYA 의제를 만들 때 조차 참조가 되어
이 없다. 따라서 그녀가 썼던 그리고 경혐했던 생각들은 거기에 기조하여 다른 사상을 만들거나
ae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이 되지 못했다.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근대적 이상을 추구하
혜석이 식민지 조선에서 구체적 여성/인간의 Bo] 조건과 PAA 제기했던 해방의
젠들이었지만, 해방이후 한국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연절되지 못했다. 그래서
작된 한국의 여성학은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계보에 나헤석을 넣지 못했고, 많은 한국
들은 neve 썼던 2 Be 글들을 마치 여성으로서 AS 쓰듯이 또 생산해낼 수 밖에 없었다,
은 근대 할 수 있다고 상상했던 이상적 자아상 즉, 생각하는 존재, 상
D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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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BBE to.
06 ruly ni 주 que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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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근대 이상이 구체적인 그녀의 예술적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헤석이 식민지 조션사회에서
의 현실 속에 기반한 해방의 의제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성취
재, 남성
치하는
인 그녀
2. 이상적인 근대적 인간에서 구체적 여성의 삶의 조건과 해방에 대한 인식으로
나혜석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FS 쓰고 SHS 한 시기는 1914-1938년이다. 이 시기의 그녀의
글들은 세단계로 구분할 수가 있다고 보는데, 첫번째 AS 그녀가 여자도 인간일 수 있다는 가능성과
낙관, 희망을 가지고 SS 쓴 시기인 1914-1919년까지이다. 이 시기에 나혜석은 미혼으로 아버지의 봉
건성에 저항하면서 오빠 나경석의 도움으로 유학을 가고, 많은 남녀 지식인들과 DHS 하면서 근대적
자아의식과 세계관, 여성의식을 학습하고 또 실천하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 시기에 쓴 BSS 아래와 |S
꾸
1914: 조선인 유학생 잡지 <학지광> 3호 “이상적 부인"(최초의 글)
1915. 4월 ㆍ조선여자유학생 친목회'조직
1917. 3월 <학지광> “잡감”, 7월 <학지광> “잡감: 언니에게 여함”, 시 “소월”
1917. 7월 도쿄 여자친목회 기관지인 <여자계> 창간호 소설발표
있었는가 또 그 담론들의 경합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하는 것을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의 모색하는
구 (조은, 윤택림 1995)를 비롯하여 신여성이 어떻게 한국 근대적 Ba] 상징으로 등장하는가하는
구 (권희영 1998), 신여성에 관한 담론 생산자가 모두 남성지식인인 것을 주목하면서 신여성이 재현 방
AS 식민지 조선 남성지식인들의 FINS 드러내는 한 AFB 읽고자하는 접근 (김수진 2000) Fol
시도되었다. 최근에는 신여성을 역사화시키는 다양한 작업들이 이루어지면서 신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평가작업들을 시도하고 있다 (최혜실 2000: 이상경 2002: 문옥표 외: 2008). 더욱이 나혜석 기
념사업회를 통해 다양한 방식에서 나혜석에 대한 접근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나혜석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다른 신여성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와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다는데서 중요한 시도이
다 (나혜석기념사업회 2002: 정규웅 2003).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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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3월 <여자계> 소설 “경희”, 9월 <여자계> 3호 단편소설 “회생한 손녀에게”
첫 번째 시기의 SSL 당위와 지향 그리고 원칙 등에 입각해 있고 신여성과 전통적인 여성간의 *차이를
분명하게 한다.
두 번째 시기는 1920-1929년까지로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모성과 예술, 가정과 일의 병행의
FASS 느낄 때이며 동시에 남편의 재정적 도덕적 지원하에서 화가로 활발한 활동을^한 때이고, 남편
과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까지의 시기이다. 여기서의 SSS 구체적인 조선, 여성 결혼 그리고 모성
에 대한 경험에 입각한 글이고, 특히 자기 경험에 기반하여 결혼이나 모성 등에 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고 다른 여성들과 경험과 이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이 시기의 글로서는 “인형의
가” “규원” “김원주 형의 의견에 대하여-부인의복 개량문제" “모된 감상기” “강명화의 자살에 대하여”
등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시기는 1930-1938년까지로 그녀가 이혼을 하고 어려운 생활을 견디며 마지막 Se 쓸 때까
지의 기간이다. 많을 이전의 기억들을 회고하는 SS] 많은데 대표적인 글로는 “이혼 고백기"를 들 수
있다. “이혼 고백기”에는 결혼과 ASAE 그리고 여성의 성에 관련된 이중규범, 남녀의 불평등, 경험
속에서 형성되는 모성애에 대한 행복과 불행, 여성의 성적 욕구 등에 대해 나혜석 자신이 갖고 있는 견
해를 다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견해는 조선의 현실과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나오고 있고, 어떤 여성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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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과 아이가 없을때 특별해질 수 없음을 쓰고 있다.
3 독립적이고 지율적인 여성의식
나혜석에게 있어서 “여성이 사람이다"라는 근대적 인간관/여성관은 첫 번째 시기에 형성되어 하나의
신념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시기의 나혜석은 1913년에 진명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오빠
나경석의 AGS 일본 도쿄 사립여자미술학교 서양화부에 입학했다. 그리고 여동생 역시 gore 공부히
러 일본에 왔고, 동생은 곧 조선으로 돌아가 ASS 했다. Yayo] 일본으로 가게되는 배경에는 가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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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일본 FHS 그녀로 하여금 근대적 자아의식과 근대적 세계관에 눈을 =
AAD, 여성의식을 갖게 했다. 일본에서 그녀는 이광수 FS 비롯한 많은 조선 지식인 남성들과 교류
를 하고, 또 최승구와 연애를 하고 (정규웅 2003), 일본 여성문예동인지 <세이토>를 중심으로하는 여성
해방론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1915년 4월에 나혜석은 당시 도쿄에 있던 조선 여자 유학생 간의 친
목도모와 지식 계발 및 국내 여성 지도 ASS 목적으로 한 '조선여자유학생 친목회'를 조직하였다. 그
리고 자신의 여성의식을 “잡감: 언니에게 여함”과 <경희>에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는 “잡감"을 가지고
나혜석이 당시에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겠다.
1917년에 쓴 글 “잡감: 언니에게 여함” (HAY 7월)에는 당시 나혜석이 가지고 있었던 남성과 여성
의 관계, 미래의 희망 그리고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에 대한 당시 그녀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글
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비난하는 “욕”을 여성들이 의식하여 소극적이 되거나 혹은 남성들의 비난을 내재
화하여 그것으로 다른 여성들을 비난하는 여자들에게 이미 새로운 경험과 Aas 지닌 고등교육을 받
은 여자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비난과 설득의 글이다. 동시에 여성과 욕체적으로 만이 아니라 정
신적으로도 결합할 수 있는 남성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더욱이 이 글은 당시 나혜석이 서구의 근
대적 지식과 울스톤크래트과 같은 여성해방 사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성들이 일을 하자고 하거나 혹은 해야 될 때 “공부해 가지고 사업하
인 자세에 대해 좀더 주체적인 입장을 가져야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성들에게 아무런 EL] 안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 여자 말이 많다, 건방지기도 하다, 남자와 교제가 Br.” 등의 BS 남자들이 하는데 그것 때
한다는 말이 되느냐... 그러면 Yao] “그 색시 안존하다, 양전하다, 말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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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언제까지 여자의 전 생명을 삼을 까요? 방구석에 들어 앉아서 삼시. 밥만 파먹고 그대로 문지방
안에서 솔래 잡기하다가 BA 죽던 그때 말이지. 오늘과 갈이 방에서 마루까지 걸어나와 대문까지
나온 우리로서 아이스크림도 맛보고 VE 먹어 본 우리로서 단테의 시나, 칸트의 철학이니, 평등이
어떻고, 자유가 무엇이니 하는 우리로서는 이른 것보다 늦은 듯 합니다. |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행하는 비난을 같이 하는 여성에 대한 반박을 한다
“ 언니 편지 중에 "여자는 허용심이 부하오. 욕심이 많소. 이것이 큰 걱정이오“하는 말씀에 큰 자
Se 받았소이다"라고 했는데 누가 이런 SS 했느냐, 남자가 그랬냐고 반문하면서 “여자는 허영
의 결정체라고 그러니까 여자는 열등한 동물이라고” 그래서 언니도 큰 걱정이라고 하신 것인가요
열등한 동물
라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허용과 욕심이 왜 나쁜 것이냐고 반문한다.
대신 나혜석은 조선여성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가지 욕심이 있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 、
“조선여자도 사람될 AS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구의 예들을 들면서 문예부홍시 시대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남녀평등이 하나의 추세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남자가 이해할 수 있는 모
12 여자도 능히 이해할 수 있다. 일로 추리해볼진대 여자의 본성적 이론, 즉 심리적 작용에는 조금
남자와 다름이 없다. 일용의 적분에 지하여는 흑 차별이 생길지 모르겠다. 여자들아! Qul7]eb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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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활동할 욕심을 가져야 겠소. 활동하는 자에게는 실패와 성공의 결과가 있을 것이오.
나혜석은 조선여성들이 사람이 되는 것, 그러기 위해 남자들과 평등해지는 것 그리고 기
터 나와야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래서 메리 울스톤크라프트와 파리의 롤
급하면서 “우리가 비난받지 않으면 rae SAS 무엇으로 Hula 말이오"”라
한다. 그래서 여자가 변화하려고 하면 당연히 욕을 먹을 수 부 "이 었으니 “우리 조선 여자 중에 누구라
욕을 먹는 자가 있다하면 우리는 안심이오. 이 는 우리가 갈망하는 사업가라 하겠소”
라며 당장 이 쓰러져가는 집을 떠나기 위해” Has 맞아 07 Al 진흙에 미끄러져 망신을 하든지 나가
볼 욕심이라고 글을 맺는다.
여기에 나와있는 FAIL 이미 새로운 AAS 향해 출발을 해버린 여성의 출사표이다. 물론 여기에 있
는 사상들이 나혜석이 구체적인 운동이나 어떤 경험을 통해 구축한 것이라기 보다는 일본 <세이또> F
NYS 영향일 수도 있다. 당시 <세이또>페미니즘은 부르조아 페미니즘이라고 단죄되고도 있었지만,
여기서 가장 SRSA 주장들은 페미니즘은 여성의 자율적 운동이어야하고, 또 여성의 성역할에 문제를
제기해야한다라는 것이었다 (우에노 치츠코 1999: 49-50). 나혜석에게 이러한 원칙은 하나의 신념이
되었고, 또 평생 자신의 AAS 끊임없이 문제시하는 AA] 되었다.
10)
4. 자유의 구체적인 실천으로서의 예술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예술활동은 나혜석이 삶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었다.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 최소로 외부의 간섭과 압력에 협력하기로 결정하고, 결혼 역시 이러한 맥락에 있었다. 이 절에서는
그러나 여성이 예술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였는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나혜석은 ge 글
에서 가정생활과 SS 동시에 하는 것이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HAYS <경희>에서 여성이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속해 있어야 하고 독립적이고 자율적
이어야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나혜석은 전통적인 여성들은 독립적이지 않았고, 여성들은 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이들와 소유였다고 강하게 비간한다. 나혜석이 초기 글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자기 자유에 대
한 확보와 그것의 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 그리고 여성이 Sao 수 있는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고민이
다. 그년는 여성들이 가족에게 그리고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여자가
되기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했다. 그러면 여자로부터 벗어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은 인간
에서 분리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인간성을 박탈당하는 것이었다는
- 33 -
--- page 34 ---
것을, 나혜석은 딸에서 아내와 어머니로 그리고 남자와 BA} 없는 이혼한 여자로 그 지위가 변화되면
서 여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경험하게 된다. 0 ,:
나혜석은 자신이 남성과 동등해지기 위해 무척 노력했는데, 그러나 당시 남성 지식인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커다란 차이는 나혜석이 여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혜석의 Ase 그녀가 딸일 때, 누이일때 그
리고 그녀가 사랑을 받는 아내여서 그녀의 Ko] 남편과 다르지 않을 때까지 허용되었타. 또 그녀의 oF
버지/오빠 그리고 남편이 그녀를 허용하고 인정할 때는 사회도 그녀를 허용하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녀
의 가족이 그리고 남편이 그녀를 버렸을 때 그들이 그녀를 버리듯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는 그녀를
버렸다. 그녀가 남성과의 관계에서 모든 Bat Bla 때 그녀는 사회에서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예술
BAY 나혜석은 바로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가능했었다는 것이다.
나혜석이 살았던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 예술가 나혜석은 아주 예외적인 존재였다. 식민지 시대에 미술
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였다. 더욱이 여자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림에 수반하는 여러 상
황들을 생각했을 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공간, 화구, =
감 등 최소의 비용이 필요했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지리적 이동인 여행도 많이 다녀야했다. | 당시에
는 그림으로는 거의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많은 남성 예술가들의 경우는 가족이나 친구
So] 지원을 받았다. 여성인 PPE 아버지나 오빠 남편들의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그렇기 때문
에 여자 화가는 딸, 누이동생, 부인의 사회적 지위 내에서 취미로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헤석은 이 문제들을 결혼 기간 동안에는 YR 지원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나혜석이 자신을 압박해오는 경제적 어려움을 타결하기 위해 최린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은
녀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ayo] 삶의 전락의 이유가 된다. 대부분의 남자 예술가들은 돈에 대
무관심 뿐만 아니라 남에게 의존하는 AE 지원받는 것을 당연시 했다. 그러나 여자 예술가가 그럴
그것은 바로 성적인 종속으로 인정되고 또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관계에서 이루어질 때
사회적 추방과 낙인을 받게 된다. 여성들은 여성이 처하게되는 사회적 상황에 대해 잘 간파하고 있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완전히 일상적 삶을 방기한채 자유롭게 des 한다는 것을 여성들은 생각할
없었던 것이다. -
예술가가 자신의 창작행위 그리고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사주는 사람이나 그림을 Fase a
단이 있어야 한다. 그럴 경우에도 여자들의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는데, 그것은 여성들이 평생 그림 그
리는 것을 직업으로하거나 미술계에서 독립적인 AAS 얻기가 어렵기 때문에 투자의 대상이 되기가 어
ARG. 여성 예술가의 예술성은 그들의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대단하지 않다고 간주되고, 여자라는 이
유 때문에 그 예술이 논란거리가 된다. 나헤석의 그림에 대해 감동이 없다는 유홍준의 평 (1999) 역시
나헤석의 그림이 사회적인 논란거리가 된 이유가 그녀의 예술성이라기 보다는 특별한 여성인 나혜석에
ㆍ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 |
그림, 예술 자체가 생계 유지가 될 수 없다는 AVS 나혜석에게는 아주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예술가
여성과 예술가 남성의 사회적 존재 양태는 아주 다르다. 예술가가 남자일 경우에 주거가 불결하거나 이
동이 HAY 남루한 웃을 AAG 사회적 지위가 없을 때 조차도 그것은 예술의 이름으로 허용된다..예
술가들이 갖고 있는 특이성으로 그리고 재능의 SAS 간주된다. 그러나 여자가 이러한 생활을 한다면
그녀가 치루어야하는 사회적 대가는 훨씬 크다. 물적 도덕적 지원을 받지 않은 여성이 예술을 한다면
AYE 거리에 나와 있을 것이고, 거리에 나와 있는 여성은 예술가라기 보다는 미친여성이거나 자기 통
AAS 상실한 여성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 예술가와 달리 여성 예술가들의 예술은 여
성으로서의 지위 위에 구축된다. 이런 맥락에서 여자가 예술가가 되는 것은 남자보다 더 많은 용기와
AAAS 뛰어넘는 상상력이 있어야 했고, 또 아버지, 오빠, 남편의 재정적 지원이 없이 여성이 예술가
가 되기는 어렵다. 이것이 바로 나혜석이 갖고 있는 딜레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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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맺는 말
나혜석이 쓴 소설과 수필 그리고 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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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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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삶과 Bes 연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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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끄러운 생각이 SYA AS 고백한다. 여성의 경험을 지석화하여
내는데 힘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여성학에서
혜석의 Zo] 페미니즘 학사나 이론 시간에 논의되지 않는 것, 나혜석의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이상인 자유와 평등에 입각하여 분석한다기 보
이상 속에서 구축한 신념 혹은 세계관을 어떻게 인식하고 = 살아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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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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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여성은 하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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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 자신을 구분하고 자기에게 속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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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다는 것이다. 나혜석은 자기를 다른 여성
는 신념이 강했다.
는 희생자의식이 없다고 본다. 그녀에게는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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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에게 있어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갖
아버지와 가부장적 ASO] 항상 문제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것을 피해가는 방식 혹은 차선적인 방
AS 택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구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남성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측면에
서 볼때 여성 혹은 어머니는 그녀에게 있어서 경쟁자가 아니었다. <경희>에서 보면 어머니에 대한 연민
과 아버지에 대한 저항이 그녀의 세계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EUS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
인다. 아버지에 저항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빠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들이 원하는 딸/누이가
되고자 하지 않는다. 그래서 AYES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공하는 여성들이 갖는 아버지의 학생, 그림자,
그리고 그의 후계자가 되려는 YAO] 없었다. 나혜석의 소명의식은 바로 기존사회전통이나 여성적 역할
의 규범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유의 실천이었고, 예술성의 기원이었다고 본다.
( SBS 삶을 살다간 난설헌 sizer)
_ 허난설헌 재조명의 의의 -
이 혜 HASH A 회장)
왜 허난설천인가?
“허난설헌 재조명'은 여성으로서의 질곡의 a So] 내재 된 자아를 예술적으로 승화했던 난설헌의 as
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살고자 했던 절규마저도 사회적 구조 속에서 유린당하고 Bs 당
했던 부분을 재조명하여 역사성(뿐또쓴)안에서 여성의 자아 의미를 강화하고 현실 속에서 희망의 메시
지를 발견해 내는 것입니다.
처음 허난설헌 재조명'을 이야기했을 때 일부에서는 ‘ol Yo] Asay 여성인권운동단체에서 ‘a waa
(?!)' 하며 의아해 했습니다.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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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00년 전 그 시대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꿈꾸며 동시대의 소외된 자들을 끌
열린 여성주의의 '숨결'이 배어있는 난설헌의 AS 통하여 “허난설헌과 여성주의”를 함
이 결코 '여성인권운동단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되었으며, CHS 통한 <
이 되었다고 해도 좋을 듯 싶습니다.
또한 “허난설헌여성문화축제"는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VAAL 문제들을 문화의 이름으로 풀어내고
근하게 다가감으로써 세대간 혹은 남녀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여성들 스스로의 자아존중감을 높이는
린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일상을 아름다운 역사로 승화시키자는 것입니다.
난설헌허초희(00901하쳤드, 1563~1589)
조선조 최고의 문장가로 동양삼국에서 이름을 떨친 허난설헌은 이름이 ※이고 난설헌은 그의 호이며
자는 ee UC,
그는 15634 BF 18, 당시의 문벌가인 양천 허씨 가문에서 선조 때 쏘툰으로 있은 초당 허엽(후로
2M, 1517-1580)의 3남3여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 허엽과 오빠들인 악록 허성( HH HK, 1548-1612), 하곡 ASMA HH, 1551-1588), 그
그의 부친
리고 동생 교산 허균(@&미 HH, 1569-1618) FA 모두 당대의 유명한 정치인 및 문장가였습니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난 난설헌 역시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습니다.
그녀가 8세에 지은 BIAWLSYSPS(MRMAERLMOS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여신동"으로
칭송하게끔 하였습니다.
난설헌은 친정에서는 출중한 자질을 <
기에 편승, 많은 지도를 받을 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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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받아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과 함께 개혁적인 집안의 분위
작은오라버니 허봉은 244 나이에 두보의 시집을 읽고 공부하였는데, 그가 8년 동안 열심히 읽어, ay
이 너덜너덜하게 해어진 책을 다시 제본하여, 책 뒷장에다 <두율(찬샘) 시집 뒤에 써서 누이 난설헌에
Al 주다(탠산생송씀추무싸뜨빼졸타)> 라는 글을 써서, 누이 난설헌에게 주어 두보의 AS 공부하게 하였
누이 난설헌의 천재를 알아주고, 그 가능성을
32
누이 난설헌의 재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적극적으로 계발해준 작은오라버니 허봉은 학산초담에서
“AR 글재주는 배워서 얻을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대체로 이태백과 ol SA SEH)
이 남겨둔 글이라고 할 만하다.” -《학산초담, 허균지음》
가족의 사랑과 지지 속에서 자라난 난설헌은 15세 때쯤에 당대의 %$\※인 안동 김씨 집안인 김성립(숲
BIZ, 1562-1592)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7 |
결혼 후, 여성으로서의 FAA HLH) 안에서 오는 질곡의 상처와 A7HEK| 유교적인
질곡의 삶, 정신적 교감을 나누지 못했던 남편, 두 자식과 태중의 자식까지 잃는 등 순탄치 못하였으며,
친정의 몰락 등을 거치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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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은 234] 때 봄 자신의 SSS 예언하는 시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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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ALALAL (SER CIE BSO] 광상산에서 노닐며) 전문입니다.
-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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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E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Bea TE 난새는 채색 난새에 어울렸구나
RRR AB 스물일곱 송이*붉게 떨어져
ALRE A Me 달빛 서리에 차갑기만 해라
불꽃같은 천재로서의 고독의 정한과 사랑하는 남매까지 잃어야 했던 여성.
실의와 BAS GT 내재 된 자아를 예술적으로 승화했던 허난설헌은 1589년 AZ 21년 3월 19일, 2
남 1녀의 자식을 먼저 보낸 한 많은 어미로서, 시대가 가져다준 aso 삶을 산 한 여성으로서, '촛=
AR 그녀의 AAAS 27세 꽃다운 Gols 마감하고, 경기도 광주군 지월면 초월리 경수동 안동 김씨
선영에 두 자녀의 무덤을 내려다보며 묻혔습니다.(남편 김성립은 두 번째 부인 홍씨와 함께 24a
다.)
그녀는 살아생전에 많은 작품을 창작했는데 죽을 때 스스로 유언을
Wa 남아있는 AS 그의 동생 Atel 자신이 외우고 있던 것과 2 | 모
정리하여 <난설헌집>을 출간하여 후세에 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난설헌의 작품을 ae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누이의 시를 높이 평가한 아우 허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
불꽃의 자유혼 허난설헌
난설헌이 산 시대\(1563 ^ 1589)는 조선 여성의 at, 그 변화의 축도%떼하에 있었으며, 난설헌을 =
러싼 삶의 환경 역시 그와 맥락을 함께 했던 것입니다.
Wade) 시대와 사회구조 속에서 형성된 질곡(쪼\)-한(뽀)의 공간, 암흑 6
간들을 AS 통해 '삶의 공간'으로 또는 '생명의 공간'으로 승화시켰는데, 이는 난설헌시()가 갖는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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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생명력입니다.
즉 자신의 BS 문학적 상상력으로 해부하고 탁월하게 시로 승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였
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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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한 여성 허난설헌, 그 질곡의 삶 속에 내재 된 자아를 예술적으로 승화했던 난설헌은 자신의 이
야기 외에도 동시대 여러 사회상을 시로 썼습니다. 죽지사와 같이 VS 동경하는 부드러운 여성의 감
AS 표현하기도 했지만, 감우, 빈녀음, 축 성원에서 보이는 것처럼 나름대로의 사회의식, 역사의식, 국
Bede 나타내는 시를 쓰기도 하여 신분제에 역암받고 ete 시달리는 백성들의 비애와 분노를 자
신의 고통으로 승화시켜 시로 풀어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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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들의 한이나 사랑, 그리옴에 국한되었던 규방시의 주제에서 벗어나 시국문제, 전쟁으로 인한 민초
의 고통, 가난한 이웃에 대한 연민 등 다양한 AAT 구사했던 강한 AIA 소유자이며, 여성에게
압적인 상황에서 자유와 현실참여를 열망했던 허난설헌. 그 질곡의 삶 속에서 내재 된 자아를 예술적
승화했던 허난설헌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은 과거와 현대, 즉 역사성뿐못씀안에서 여성의 자아 의
발견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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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이 심화되었던 조선후기를 살다간 난설헌이 그 시대를 살다간 +B
여성에 대한 은 다른 여성들과
다른 점은 당시의 통념에 Aoholz] 않고 인생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진지한 사고와 추구를 시가창작을
통하여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항하면서 그녀의 삶과 죽음을 재조명을 해야 합니다. 여성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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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바로 보고 여성의 목소리로 힘차게 외쳐야 합니다.
'그녀의 삶은 가치있는 것이었고 그녀의 시는 그 시대 모든 여성들을 대신하여 외친 차별과 억압이 없
는 사회에 대한 열망의 승화였다'고 말입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당당히 평가받은 난설헌 허초회.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그의 작품 속에는 보편적인 양성평등을 꿈꾸며 동시대의 소외
된 ASS Boe 부드럽고 열린 여성주의의 숨결이 배어 있습니다. -
되살아난 '허난설헌의 숨결'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더 깊이 젖어 들어 YS 통하여,
현 사회 구조 속에 PAH) AVL SEH) 의식 확산에 물꼬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
*참고문헌 : 허미자 '허난설헌연구'-1984, 장정룡 '평전 허균과 허난설헌'-1999, 김성남 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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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어볼까요?-책 소개
「20세기 여성사건사」
저자 : 길밖세상 지음
출판사 : 여성신문사
20세기 한국 여성의 AAS 어떻게 쓸 것인가? 이 책에서 저자는 일제시대 기생,
나혜석 이혼사건, 전쟁미망인 문제, 자유부인 논쟁, 박인수 사건, 가족법 개정 운
동,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 윤금이 살해사건, 군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황혼
이혼 등 파격적으로 기억되는 사건들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하여 지난 세기
가 한국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조명했다.
<순서>
"현모양처"와 "신여성"의 동상이몽 ..
국가의 관리아래 신음하는 nee wid
"나도 남자처럼 살아보겠다" ...
"배운여성"의 일, 그 wap aan 51
여성 스스로 해방하는 날, 세계가 해방될 것이다 ...64
날고 YS "SFA" ...77
Sad 위의 투사,강주룡 ...90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 ...100
정조는 취미다 ...109 |
위험한 여성, "전쟁 미망인"의 타락을 막아라 ...122
남성팬터지의 산물 『자유부인』의 성 정치학 ...135
AA] 페허위에 Sa) 세워진 "정조관념" ...148
호주제, 식민주의와 가부장제의 공모 ...159
너무 많이 낳아 창피합니다 ...173
여자가 나서야 나라가 산다? ...187
서글푼 "공순이"에서 당당한 "노동자"로 ...201
당신의 결혼을 알리지 말라 ...214
AMS 성폭행하는 민주구가, 대한민국 ...227"
변혁의 시대가 목도한 또 다른 물결 009 .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낮은 wea
천대받던 "양공주"에서 순결한 "민족의 gre ..267
Zaz 성폭력이 낳은 비극적 살인사건 ...276
침묵에서 외침으로 ...286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 ...298
단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311
시대의 FAS 벗고 일상의 정치에 나서다 ...322
사이버 스페이스,여성운동의 새로운 도전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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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다시 쓴다,
저자 : 정희진
출판사 : 한울아카데미
2
Ae 현재 WOASA 운동이 AVE 딜레마에 천착하여 그것을 해결할 +
lee 사유를 sage, 또한 그간 4 JSqS 문제화하는 데 WS] 전제되
Lela 개념의 서구 근대 남성중심적 사유의 Se 비관하고, 이를 극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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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론적, 인식른적 ABs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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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발간사
서문: 법제화 이후의 여성운동을 위하여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본 여성에 대한 폭력
가해자 중심 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의 '해결'은 가능한가-《85 노조 간부 성폭력 사건의 여성 인권 쟁점
아내폭력 피해여성의 정당방위-"저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남편의 마음이었습니다"
미디어, 섹슈얼리티, 여성인권-여성연예인 비디오 피해 사건과 인권
성폭력, 성별 정치가 남성간의 정치로-제주도 도지사 성추행 사건
가족을 구성할 YAS] 권리-미혼모의 양육권
자발과 강제의 이분법을 넘어서-군산 성매매업소 화재 사건
인권, 보편성과 특수성의 딜레마?-여성주의 시각에서 본 인권
『섹슈얼리티 강의」
저자 : 한국성폭력상담소 편
출판사 : $4 -
섹슈얼리티를 화두로 삼아 지속적인 연구작업을 하거 나 현장에서 일해온 신진 여
성학자들이 자신의 삶과 우리사회의 성문화를 진단,분석한 책이다. 한국 페미 니즘
연구의 현황과 전망, 영화에서 재현되는 여성 의 성과 SAA 등 10편
글들이다. |
성
의
<순서>
001. 한국 페미니즘 성연구의 현황과 전망 |
002. 섹슈얼리티를 통해 본 한국의 근대성과 여성 주체의 성격
003. 영화에서 재현되는 여성의 성과 육체
004. 일상생활 속의 포르노그라피 정치학 |
005. 여성 다이어트 경험을 통해 본 몸의 정치학
006. 우리는 왜 성매매를 반대해야 하는가
007. 낙태 보고서 - 연애에 나타난 권력 지형도
008. 한국 레스비언의 성과 삶
009. 성폭력 의미 구성과 여성의 차이
010. 남성의 섹슈얼리티와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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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우리 또 만나요!!
1. 1회 여성역사기행 후기를 공모합니다.
8월 14일까지 18 여성역사기행 카페로 올려주세요.
올리신 후기를 모아 기념 CDS 제작할 예정입니다.
Pls 모든 분께는 기념 CE 무료로 드리며 1등에게는 상품도 드립니다.
2. 1회 여성역사기행 사진 콘테스트
8월 14일까지 여성역사기행을 통해 찍은 사진들을 올려주세요!
올리신 사진들을 모아 기념 CDS 제작할 예정입니다.
참가하시는 모든 BAS 기념 CDS 무료로 드리며 1등에게는 상품도 드립니다.
3. 8월 14일 정대협 평화한마당에서 한 번 더 만나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우리 잊지 말아야겠죠. 8월 14일 서울 시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온 많은 단체 및 인사, 시민들이 참여해 평화한마당을 합니다.
1회 여성역사기행 참가자들인 우리가 빠질 수 없겠죠?
전여대협 1회 여성역사기행 참가자의 이름으로 SAE 해보고 할머니들도 만나고 자원활동도 하며 8월
14일 평화한마당을 만들어갑시다.
구체적인 기획안은 다음 Aol 첨부합니다.
4. 1회 여성역사기행 카페로 오세요!
8월 14일에 만나는 걸로는 너무 아쉽죠?
우리 정기적으로 카페에서 만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다가 오프라인으로도 만나구요^^
13] 여성역사기행 카페를 운영하며 정기모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실 분은 손 들어주세요.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과감히 운영자로 등업, 파바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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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59주년맞이 평화주간
'평하와 만나고 노라며, 꿈꾸다"
1. 행사의 의의 |
가. 해방 59주년을 맞이하였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좀더 포괄적인 a
쟁 중 여성인권의 문제로 끌어냄으로써 시민들의 의식 속에 과거문제가 아닌, 현재문제로 자리잡게 한다.
나.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학생 및 대학생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냄으로써 학교에서 배우는 인권교
육, 평화교육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
다. '평화 를 주제로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평화한마당을 기확, 연출함으로써 보다 Be 사람들이 일본군 '
위안부' 문제와 여성인권의 문제를 평화의 문제로 직접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 앞으로 다시는 이러
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평화실현의 첫 AS] 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게 한다.
마. 매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진행하였던 일회성 광복절 기념집회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광복의 의미 속에서 평화와 여성의 인권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2 행사의 목표
가. 2005년은 해방 60돌이자 분단 60년이 되는 해이다. 반세기가 넘게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문제
는 이제 남쪽만의 문제가 아닌 민족의 문제이다. 일본군 위안부" Bae 남과 북, 우리민쪽끼리 단일한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갈 것이며, 이 거대한 Ye 잘못된 과거청산은 물론 민족의 Ay 역사를 바로 잡아나
갈 것이며 나아가서는 통일의 기운을 북돋을 것이다.
나. 우리민족에게 있어 전쟁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자는 여성임을 똑똑히 각인시켰던 계기가 「위안부
。 문제였다면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 이라크에서도 여성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이며
강간과 폭력 속에 몸서리치고 있다. 우리는 이라크 민중, 여성들이 우리의 일본군 '위안부' 와 다를바
음을 확인하였다. 모든 전쟁을 비롯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에 의한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며 과거
일제와 다를바 없는 우리나라가 전쟁의 동조자, 침략자가 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하고 이라크 파병 철회
. 와 추가파병을 반대한다.
다. 현재 정대협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쟁-여성평화박물관」을 온 국민의 Jor 세울 수 있도록 기념관
사업이야 말로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는 장으로 될 수 있도
록 참가한 사람들로부터 기념관 사업에 막차를 가할 수 있는 장의 역할을 한다.
3. 행사개요
(1)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619차 정기수요시위
- 85 특별수요시위 및 평화주간 선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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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일시 : 2004년 8월 끄일(수) 정오 124)
ㆍ 장소 :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2) 전쟁여성인권 영화제
ㆍ 일시 : 2004년 8월 1298), 13일(금) 오후 1시 ~ 5시
ㆍ 장소 : 광화문 영상미디어센터 (일민미술관 5%)
[ 상영일정 -
8월 12일 13:00-14.40 낮은 목소리 1
1450-15:15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을 위해 - 일본군 “Heke 운동
15.20~15235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
15:45~16:55 낮은 목소리 2
8월 13일 13:00~13.45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
13:55~14:20 끝나지 않은 이야기 _
14:35~15:25 귀향
15:40~17:00 숨결
(3) 평화한마당 - '평화평화평화
ㆍ 일시 : 2004년 8월 14일(토) 오후 4시 ~ 9시
ㆍ 장소 : 서울시청 시민광장
DIF 평화시민난장 (오후 4시~6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국제 AVA
'내가 바라는 평화공동그림작업 / 평화 및 일본군 '위안부" ARIA
AQAA : 상명대 만화학부 케리커쳐 동아리 “ARE
BS} 페이스페인팅 / “전쟁' ‘ey 물러가고, '평화'야 와라
ㆍ전쟁의 퍼해자를 통해서 평화배우기
D 2부 평화광장 (오후 6시~7시)
Bal] BE 여는 길놀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평화의 시 낭송과 노래공연
평화 퍼포먼스 “소리없는 만가" / ㆍ간디학교 학생들의 평화의 노래
여성역사찾기 참가자 / ㆍ전쟁, 평화, 일본군 '위안부" 관련 영상물
> 3부 평화 평화 평화 (오후 ?시~9시)
출연 가수 : 홍순관, 안치환, 이정미, 백창우, 자전거를 탄 풍경, 김미화, 김정연,
굴렁쇠 등의 공연 :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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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매일 나의 활동을, 내가 느
7월 30일 경계 허물기, 마음 트고 함께 꿈 가꿔가기
13] 여성역사기행을 준비하며, 나의 마음과 목표를 써봅시다.
-따로 종이를 드려요^^ a
74 31일(토) 공동체의 발견, 관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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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나혜석'으로 삼행시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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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1일(일) 가슴 펴고 어깨걸고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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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화) 여성의 삶을 현재에서 재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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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단원과 나눈 대화 중에 기억에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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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열심히 한 단원을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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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수) 여성이 새로 짜는 세상, 다시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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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방문지와 기역에 남는 전시물, 기역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 기행단원과 나눈 대화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습니까? 궁금한 것이나 더 토론해보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하루를 돌아보며 성과와 반성할 점, 내일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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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로 육행시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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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장 열심히 한 단원을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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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우와, 반갑습니다! 전화번호 e-mail 적기
이름(학교) E-MAIL 전화번호 나에 대해 한 줄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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